2022년 3월 15일 화요일

보살이 돼야 극락에 왕생/ 불교 위대한 가르침이여!

  

라마크리슈나, 람티어쓰

 

 

 

 

19세기 인도에 라마크리슈나라는 종교인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불교, 자이나교, 힌두교, 유태교, 이슬람교, 기독교에

차례로 입문하여 혼신을 다해 수행했습니다.  그래서 각 종교

의 궁극의 경지를 두루 두루 체험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신비를 몸소 체험해 삼매에 들어도 봤고, 깊은 깨달음

을 얻었던 천재적인 수행인이었습니다.  오랫동안 많은 종교수행

을 거친 뒤, 그는 "모든 종교는 그 근본에 있어서 하나"라고 선언

했습니다.

지난 세기 인도의 신비주의자 람티어쓰는 자기 존재의 실체를

깨닫고나서, 우주 전체가 자신 속에서 움직이고 있음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이 우주이며, 모든 것이 자신 속에 있음음 깨달

았답니다.  영원불멸하는 본체를 깨닫고, "나는 무한한 부라흐만

주창조의 원리 주체이 되었다"고 사자후했습니다.

 

 

 

 

 

히말라야의 성자들

  

 

 

베어드 T. 스폴딩이 쓴 <히말라야 성자들의 삶과 가르침> 이라는

책은, 불법을 공부하는 수행인들이라면 한 번 쯤 읽어봐야 할 양서

입니다.

 

이 책에서는 모든 만물이 생성되어 나오는 보편적인 실체세계

교의 공와 모든 것은 이미 거기에 존재하고 있다는 '무일물중무

진장'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만물의 근본이 되는

중심적인 존재의 불꽃에서 첫 번째 세포궁극입자가 탄생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몸에 우주의식이 있으며, 빛을 방사하는 일곱 개의 센터

centre가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모든 존재 속에는 생명의 빛, 곧 진

리와 신성이 존재한다고 갈파하고 있습니다.  오백년 혹은 천

년 아니 그 이상을 장생불사하고, 하늘을 날아다니며 생사끼지도

마음대로 하는 초인들이 지금도 히말라야 깊은 산 속 동굴에서 한

평생을 두고 수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바바지라는 불

세출의 성자는 수십 세시2천년 이상를 죽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

 

구루 라즈니쉬의 말에 의하면 이들은 차크라의 일곱 단계를 모

두 통과한 절대자유인이요, 완성자들입니다.  자기 존재의 빛, 곧

'나는 완전 무한절대다' 라는 것이 참된 명상을 토해 드러난다고

법문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중국이나 한국 불교의 대선사들 보다 못한 게 뭐가 있습

니까?  오히려 저 히말라야의 깊은 동굴 속 초인들은 장생불사를

하고 마음대로 죽기도 하고, 하늘을 나는 등 신통이 자재합니다.

지금의 불교만큼의 철학도 갖추고 있습니다.

 

여러 불자님들! 우리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코끼리의 한 부분만을 만지고, 코끼리를 말하는 장님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보다 깊은 수행, 보다 깊은 깨달음을 완성해서 중생을

향도해야 합니다.  하나밖에 모르고서 눈먼 이들을 이끈다고 나선

다면 모두 함정에 빠집니다.

 

우선 내가 위에서 소개하여 말한 책 속에 나오는 성자들이나 초

인들은 불교에서 볼 때 무루대아라한급 성자거나 혹은 외도의 상

품 보살급의 수준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붓다의 수준은 아닙니다.

 

결코 붓다가 아닙니다.

 

그 분들은 삼계의 지존이신, 불신원만보신과 청정법신을 구족하신

부처님붓다들의 존재를 알지 못했습니다.  아니, 알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스스로 궁극의 깨달음을 이루었다 생각하지만, 어

디까지나 적은 열반을 얻었을 뿐입니다.  결국 부처님을 외면하는

외도들에 불과한 것입니다.

 

맥도날드 베인이 쓴 티벳의 성자들 이라는 책에서는 린시라,

게시 린포체, 토은라 대사등 많은 밀교의 대수행인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내적실재인 참 나를 자각해서 완전한 깨

달음에 이르렀을 때 우린 곧 우주의 움직임의 중심이요, 온 누리의

모든 힘과 직접 연결되어 있는 큰 존재가 되고 우주가 된다." 고가

르칩니다.

 

책에 나오는 티벳의 성자들은 불교도이므로 외도가 아닙니다.

 

그들 역시 아직 붓다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불신을 얻지 못했기 때

문입니다.

 

나는 말합니다.  유교의 즉물긍리의 수행, 힌두교의 요가

탄트라 수행, 이슬람교의 수피즘들의 명상수행, 유태의 카발리즘

수행법으로도 우주의 궁극이나 존재의 근윈까지는 깨칠 수 있습

니다.  충분히 영생을 얻고 해탈을 성취할 수도 있습니다.

 

90세의 늙은 자기 몸뚱이를 벗고, 코브라에 물려 물에서 떠내려

오는, 죽은지 3일이 채 안 된, 30대 젊은 청년의 시신 속으로 들어

가 한 생을 산 힌두의 요기 '부레 바바, 자기 만장을 써놓고

좌탈한 조선의 유가 도인 정북창 같은 도인들이 이 세

상에는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물론 붓다가 아닙니다.

 

 

 

 

 

동서양의 철인들

  

 

서양의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헤켈, 야스퍼

스, 하이데거, 중국의 공자와 맹자, 노자와 장자를 위시하여 주염

계, 장횡거, 이정정명도 정이천 형제, 주희 주자, 육상산, 왕양명, 우리

나라의 서화담, 퇴계, 율곡 등은 존재의 궁극을 보고 견성은 했으

나 깨달음을 완성하지는 못했습니다.  이들 중 만세의 사표라는 공

자는 정토보살입니다.

 

여러분!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아함경>>에서 나오는 위빠사나 수행법은 삼계의 대법왕,

'붓다 중의 붓다'이신 석가모니부처님께서 몸소 일러주신, 보다 훌

륭한 수행법이라고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밀교의 수행법을

포함한 북방 대승불교권의 여러 종파의 관행 수행법 역시 휼륭

합니다.

 

스승님의 법문을 듣고 언하에 깨쳤건, 간화선으로 깨쳤

건, 청정 무소유 두타행하면서 관법선하다 존재의 속성을 보고

깨달음을 성취했건 간에 일단 깨달음을 얻은 다음이 중요합니다.

깨침에는 강약이 있습니다만, 모두 깨친 이후가 중요하다는 점에서

같습니다.

 

무엇보다 여자 관계가 제일 무섭다는 말을 재삼 강조합니다.  그

리고 이제부터는 자기를 죽이는 공부를 지어가야 합니다.

묵언하고 망어업을 짓지 말아야겠습니다.  삼매 중에 부처님께서

들려주신 말씀을 소개합니다.

 

"한 번 내 뱉은 말은 거두지 말라.

약속을 한 이상 반드시 지킬 것이니라."

"말을 가벼이 하지 말라.  꼭 쓸 말 만 하여라."

"장담하지 마라."

"제왕같이 말하고 누운 풀처럼 행동하라."

 

수행인은 착심과 상을 떼기 위해 가능하다면 두타행으로 들

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깨달음을 완성하면, 거기가 대아라한 자리

요, 성중입니다.  이것이 부처님의 메시지입니다.

 

역기서 더욱 정진해 들어가되 타력, 곧 부처님의 위신력을 입도

록 염불선으로 나가야 합니다.  철저히 삼업을 청정히 하면서 대승

경전 독송, 다라니 암송, 돌아가신 부모님과 조상님들께 완전한 효

를 다해야 합니다.  그 중 한 사람이라도 악도에 남아 있는 한 부처

님의 가피력을 입을 수 없습니다.

 

염불선으로 삼매에 들어서 빨강가사를 수하신 문수 보현과 관

음 세지보살의 부처님 광명을 온 몸으로 받으면 이제 보살위에 올

라 보살과를 얻습니다.  보살지에 오른 이는 자기 몸에서 종종 공부

중에 태양 빛 몇 백천 개를 합한 것 같은 빛을 방사하기도 합니다.

 

보살의 영체는 떠오르는 아침 햇빛같이 밝고 맑기 때문입니다.

 

 

 

 

 

태국의 보살 '아짠문'

  

 

50여 년 전 태국의 위대한 두타행 수행자이며 위빠사나선의 수

행자인 아짠문은 대아라한과를 지나 보살지에 올라서 정토에 왕생

했습니다.  우리 수행인들은 그 분의 수행을 마땅히 귀감 삼아 따라

야 합니다.

 

두타행은 부처님께서 몸소 실천하시고 제자들에게 권하신 훌륭한

수행 가풍입니다.  상과 집착욕심, 허영, 공포을 극복하는 최상의 방편입

니다.

 

이렇게 수행하지 않고서 어떻게 그 질긴 집착과 상을 떼어낼 수

있다는 말입니까?  나를 죽이는 공부로는 두타행만큼 좋은 것이 없

습니다.  해탈을 성취하는 최상의 길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큰 스승을 만나 지도 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마

장을 막아 주고 해탈로 이끌어주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루에 단 몇 시간을 공부하든 혼을 빼는 수행이 필요합니다.  마

음 집중이 바로 공부를 이루는 요체입니다.

음계를 지키고 계율로 무장해야 합니다.

 

오직 청정한 삶과 무소유를 지향해야겠습니다.  청정은 부처님의

가르침의 핵심입니다.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이기에 위대하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습

니다.  다른 종교에서도 깨달음은 있습니다.  그리고 깨달음만으로

곧 붓다가 되는 것도 아니요, 이제 그것은 시작에 불과한 것입니

다.

 

 

 

 

 

붓다 _ 성주성

 

 

 

불교는 완벽한 생사 해탈, 곧 대열반을 얻을 수 있는 위대한 종

교입니다.  다른 종교에서는 붓다가 나올 수 없고 불 보살이 출세

할 수 없습니다.  불교에서만이 붓다가 나옵니다.  '성자 중의 성자

라 할 수 있는 붓다가 탄생하십니다.  보살이 출세합니다.  이 점이

바로 불교의 위대한 점입니다. 

 

 

 

 

 

나 없는 공부의 의미

 

 

삼천대천세계 모든 붓다들께서 입을 모아 하신 말씀이 바로 '나

없는 공부'입니다.  이기심을 버리고, '나'라는 생각을 버리도록 무아

를 가르치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나'가 있음으로 인해 탐욕이 일어나고 그러다 보니

끄달림  집착  산란심  불별심  머묾이 일어나며 마침내 그 속박에

서 벗어날 수 없기에 세상의 허망함을 말씀하셨습니다.

 

태어나면 늙고, 늙으면 병들고, 병들면 죽는 생로병사를 말씀하

시고, 세상 모든 것에 집착헐 것이 못 된다 하셨습니다.  이 육신은

언젠가는 죽어 없어지므로 세상 명예와 부귀가 다 소용없으니 오직

나 없는 공부를 가르쳐, 죄 짓지 말고 착하게 살라 이르셨습니다.

 

부처님은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비우는 작업, 나를 없

애는 작업을 끝까지 해내라!  모두가 생멸함에 이름만이 있을 뿐,

초월 세계에 가면 이름마저 없다!  중스님이 사음하면 그 양과

정상에 따라 처해지는 형이 다르나 화탕지옥행 한다!   거사나 선

여인, 일반 속인의 경우에도 역시 개인의 사정에 따라 다르나 중지

옥행을 피할 수 없다!  모두 깊은 삼매 중에 부처님께서 직접 일러

주신 메시지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수다원과에 도달하는 것만도 이는 현세의

정복자나 세계의 대통령 자리와도 바꿀 수 없는 성취라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화두 타파의 수준입니다.  천인이나 신요정이나 팔부중 등

들도 윤회하지만, 수다원과에 도달하면 인간 이하로는 환생하지 않

으며 항상 향상할 수만 있다면 몇 생 안으로 아라한의 지위에 올

라 윤회에서 벗어납니다.

 

아라한의 마음은 맑고 청정해서 그 영체의 색깔은 한가위 보름

달의 은백색 빛깔이라고 다시 한번 분명히 밝힙니다.

 

대 소승불교의 여러 수행 방식으로도 윤회를 뛰어넘는 성중

으로의 진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자기 근기에 맞는 수행법으로 지

도자를 만나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수행의 요체는 마음을 맑게 하

고, 스스로를 제어하는 것에 있습니다.

 

 

 

 

 

신통은 생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자이나교, 힌두교, 유교, 유태교, 이슬람교 등의 수행법으로도 휼

륭하게 삼매에 들 수 있고, 윤회를 벗어나 초인이나 도인이 됩니

다.  다만 이들은 붓다와 그 법에 귀의하지 않기 때문에 외도에 속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외도 성자들의 신통을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신통은 생

사 문제의 해결에 보탬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신통이나 영통이란 기본적으로 명부에 들지 못한 영가귀신, 이매

망량들 그리고 정령들이 빙의돼서 옵니다.  또 중음 마가 된 산

속의 요정, 목신, 신성 등이 빙의되거나 외도 신, 하늘 마들의 도

움을 받아서도 옵니다.  그러기에 신통은 악도로 떨어질 업을 짓는

것입니다.  전생에 신통이 장한 도인들의 다음 생이 저주받았다

싶을 만큼 불행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나는 종종 불교가 위대하다고 힘주어 말하곤 합니다.  왜 불교가

위대한지 알려드리고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유교나 도교의 성인들 아니 힌두교,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의

초인들이 도달할 수 있는 영적 내면 세계는 생각이 끊어진 의식

이전의 마음 자리까지입니다.  우주의 근원인 법성, 곧 본래 면목

자성 자리까지는 나아갈 수 있습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동굴 속에 갇혀 있다가 갑자기 태양 빛이 쏟아

지는 동굴 밖으로 풀려 나왔다고 가정합시다.  오직 강렬한 빛에,

무슨 사념 따위가 끼어 들 수 있겠습니까!  공부 중에 공을 참구

해 들어가는데, 이런 경계가 드러난다면 여기가 바로 마음 자리입

니다.  여기까지는 모든 종교의 수행방식으로도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라마크리슈나나 람티어쓰 같은 이들이 신비 체험을 하고

난 이후의 일성이 "모든 종교가 그 근본에 있어서는 하나"라는

것이었습니다.  우주 의식이 되어, 곧 삼매에 들어 노래한 것입니다.

 

여기까지 도달한 인도나 중국의 수행인들이 장생불사하는 기법,

인간으로의 환생법, 의식 전의법, 생열법, 분신불, 공중보행술

그리고 축지  둔갑술 등 온갖 신통술을 개발해냈습니다.

 

그들은 보다 깊은 배후에 우주 속에 변재한 비인격적인 창조

우주적인 대원리를 파악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극락보살의 세계, 무

아 속 붓다의 세계는 몰랐습니다.  아니 알 수 없었을 뿐더러 앞으

로도 알지 못할 것입니다.

 

여기서 나는 말합니다.  무아 속 절대 초월의 세계가 있음을 밝힙

니다.  여기는 오직 불과를 이룬 붓다만이 들어갈 수 있는 세계이며

우리 교주 불 세존께서 최초로 발견하셨습니다.

 

붓다의 세계로 가는 징검다리가 보살입니다.  보살의 세계요, 청

정이요, 정토극락입니다.  여기서도 백천만리 깊이 들어가면 보살

과도 현격히 차이나는 붓다의 세계가 있습니다.  상적광토법신불의 세계

혹은 연화장세계보신불의 세계라고 합니다.  거기 무아 속 절대세계에

삼신을 구족한 붓다님들이 있습니다.  붓다님들은 각기 창조주의 반

열에 듭니다.

 

붓다는 빛입니다.  그 빛은 지혜이며 자비요, 신통이며 복덕

이요, 오염되거나 손상될 수도 없습니다.  우주에 뻗쳐있어 변재하

시며 동시에 초월하십니다.  보신으로 현신했을 때의 상모는 단엄하

시어 32상 80종호 이상이요, 광휘 현란합니다.

 

또한 보신불보신부처님은 지혜와 자비, 신통, 삼매, 복덕을 구족하시

며 백천만억 화신을 내십니다.

 

오직 불교에서만 보살이 나오고 붓다가 나옵니다.  보살은 자력과

타력, 곧 부처님들의 가피력에 의해서만 탄생합니다.

 

공부 중에 부처님을 뵙고 이른 아침 동녘에서 또오르는 햇빛같

이 강렬한 부처님문수, 보현, 관음, 세지의 광명을 온몸으로 받는다면 그

경지부터가 보살입니다.  안팎이 드러난 청정 영롱한 청색 지혜광명

입니다.

 

보살지에 오른다면 붓다 되는 일은 보장됩니다.  보살부터는 불퇴

전이기 때문입니다.  <<대반열반경>>에서 "대열반광부처님의 광명이 중생

의 털구멍으로 들어가는 자는 반드시 불도를 이루리라"이르신 대목

과, "만약에 부처님불신을 보는 자는 곧 일체 번뇌가 다 끊어지고

부처님 말씀을 듣는 자는 반드시 불도를 이루리라"하신 말씀을 주

목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라한 성자는 청정 계율을 선지하면서, 나를 죽이는 공부 그

리고 바라밀 수행을 해 나가야 합니다.  염불선으로 들어가야 합니

다.  부모께 효를 다하고 보살행을 쌓아 가면, 자신의 영체는 아침

동산에 떠오르는 태양처럼 청정해져 갑니다.  모든 번뇌망상이 쉬어

서 뜨달림, 집착, 머묾 없는 경지에 들어 급기야 깊은 삼매에 자유

로이 듭니다.  그러면 보살과를 얻어 서방극락에 왕생합니다.

 

<<정토삼부경>>을 보면 불설이 아닌 대목이 많습니다.  학자들의

가필 때문으로 보입니다.

 

대승경전은 불교의 삼법인 사상에 따라 학자들이 삼매에 들어서

구전으로 내려온 부처님 말씀을 의지하여 쓴 작품이라고 합니다.

 

대승경전은 기원 전 2세기 후반에서 서기 6~7세기에 걸쳐 성립됐

다는 것이 학자들 간의 정설입니다.  <<반야경>>은 기원 전 2세기

후반, <<금강경>>은 서기 150~200년, <<법화경>>은 기원 전 1세기

경, <<화엄경>>은 1~2세기 사이에 편집된 것으로 보이나, 지금 우

리가 보는 <<화엄경>>은 서기 4세기경에야 집대성됐다고 합니다.

 

대승비불설에 대하여는 다음 기회에 말씀드리겠습니다.  다만 이

기회에  학자라는 사람들은 경을 제작할만한 깊은 삼매에 절대로 들

수 없다는 말씀만 해 둡니다.

 

어쨋든 지금은 중국에서 찬술됐다는 <<정토삼부경>> 중 <<관무량

수경>>의 구품 왕생에 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 대목은 십념을 통해 하품하생으로 왕생하면 12대겁을 지

나 비로소 법설을 듣는다 했고, 중품중으로 왕생한 이는 1소겁을

지나 비로소 아라한 도를 이루며, 상품중으로 왕생한 이는 곧 아미

타불께서 관음, 세지 두 보살과 무수한 천인들을 대동하여 수행자

앞에 이르러 접인해 가는 것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보살이 돼야 극락에 왕생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서방극락세계에는 보살지에 오른 성

자만이 왕생합니다.  이 법문 말씀은 관음보살님께서 일러주신 메시

지입니다.  모든 부처님들의 한결같은 말씀이기도 합니다.  또 실제

로 그렇습니다.

 

극락세계는 윤회를 벗어난 해탈오계이기 때문에 중생도 없고 여

자도 없습니다.  시공을 초월한 정토이기에 아라한도 없습니다.  보

살만의 세계입니다.

 

분명히 밝히는 것은 극락세계는 성중 곧 아라한이 염불 수행한

후 타력에 의하여 보살이 돼야 갈 수 있는 그런 높은 정토의 세계,

청정 국토라는 것입니다.  아라한 하늘의 위가 미륵부처님이 교주로

있는 도솔정토도솔천 내원궁이며, 도솔정토 위에 꽃비를 내리게 하는

천녀정토가 있고, 천녀정토 위가 바로 서방극락세계입니다.

 

다른 사람의 죽음을 대신할 사람, 자기가 대신 죽어 그를 살

릴 수만 있다면 흔쾌히 죽음까지도 불사하는 그런 사람을 불교에서

는 보살이라 합니다.  불교는 그런 보살 성자를 내고, 붓다를 내는

종교이기에 위대합니다.

 

 

 

 

 

그리스도 바바지_역시 붓다는 아니다!

   

 

20세기 최고의 요가 수행자로 알려진 인도의 파라마한사 요가난

다의 저서를 보면, 지금까지 6백 살도 넘게 살고 있는 트라일랑가

같은 위대한 싯다완성된 존재들을 위시하여 수 세기 아니 어쩌면

수천 년 동안 자신의 유체를 보유해 온 그리스도 바바지, 45년 동

안 깊숙한 동굴에서 하루 스무 시간씩 요가 명상을 하면서 초월의

식 속에 사는 요기요가 수행자람고팔, '세계 8대 불가사의 성녀'로 꼽

히며 50년 이상을 한 조각의 음식도 먹지 않고 사는 여자 요기 기

리 발라 등의 위대한 성자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인간이 스스로 지은 업을 따라 육도를 윤회하는 것은 기

본적으로 잘 아고 있었습니다.  육체 안에 있는 영체들을 이야기하

고 있으며, 수행인이 깊은 삼매에 도달함으로써 '천상의 천상' 이라

할 수 있는 윤회를 벗어난 하늘에 난다고 설법합니다.  보다 높은

근원적 세계로부터 온, 거의 완전한 대성자의 존재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런 성자들이 역사 이래로, 힌두교에서만 기백 명이 출

현하였다 해서 힌두교의 우월성을 과시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힌두

교는 심오한 철학을 갖고 있습니다.

 

중국은 중국대로 자성속의 보고영보국를 개발하여 장생불사

를 비롯해 온갖 신통법을 창출해 냈습니다.

 

또한 고대 인도에서 발상한 탄트라는 유대 신비주의 쪽으로도

흘러 들어가카발리즘 신과 인간에 대한 심오한 비밀을 밝혀내고 잠재

적 쿤달리니 에너지를 개발해내어 영적인 무한한 능력을 일구어 냈

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초인들은 청정법신 원만보신 천백

억 화신은 구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삼신을 갖춘 붓다가 아닌

것입니다.  곧 그들은 창조주브라흐만, 신, 우주 자체가 될 수도 없고 하나

로 계합하지도 못합니다.

 

나는 말합니다.  위에서 소개한 여러 성자들은 윤회를 뛰어넘어

초월 해탈은 증득했으나 우주 자체, 우주의 근원 빛과는 계합하

지 못했습니다.

 

붓다만이 우주와 계합합니다.  붓다만이 빛과 하나 됩니다.

 

그래서 저들은 대아라한이나 보살급 수준의 외도 정도로 그

칠 뿐이요, 붓다가 아닙니다.

 

오직 붓다만이 우주와 하나로 계합합니다.  붓다의 몸은 우주 자

체인, 본원의 빛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 비밀을 아

는 이는 역사상 부처님 이후 불과를 처음 이루신 사리불 수보리

존자 두 분밖에 없습니다.

 

 

 

 

 

겁에 하나 출세하는 붓다!

 

  

불교의 위대한 점은, 불교에서는 이러한 붓다가 나온다는 점입니

다.  삼신을 구족한 붓다는 오직 불교에서만 출세합니다.

 

실제로 어느 대성자라도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을 볼 수 있다면

감격의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원만보신과는 비교도 안 되는, 모든

붓다의 청정법신을 한 몸뚱이로 하는 세존의 진불인 청정법신 비로

자나불 말입니다.

 

여름 한 낮의 햇살, 눈이 시려 볼 수 없는 그런 빛을 백천만 개

합친 것과도 비교가 안 될 만큼 엄청난 밝은, 수미산만한 대지

의 빛 덩어리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을 보고, 하나님이나 창조주 따

위를 넘어서 우주 자체가 되어 버린 무서운 그 부처님의 능력과

지혜를 감득할 수만 있다면 불교의 위대함에 감읍하지 않고 견딜

수 없을 것입니다.

 

한 분의 붓다는 그 위대함에 있어서 모두에서 소개한 여러 성자

들도 감히 따라오지 못합니다.  세존께서는 붓다의 출세를 "겁에 하

나, 천만 생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하다"고 비유하십니다.

 

'중생 그리고 인간은 본래 불'이라 합니다만, 부처님께서는 그렇

게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다만 누구나 불성이 있기에 가능성이

있을 뿐입니다.  무명 번뇌를 다 거두어 내고 업장을 다 녹이면 성

자가 되고 나아가 공부가 날로 향상된다면 보살이 되고 언젠가는

붓다가 됩니다.

 

그리고 일체 중생이 여래의 지혜 덕상을 다 갖추고 있다는 경의

말씀도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 말은 마치 하나의 미세한 먼지 속

에 우주가 들어 있다는 <<화엄경>>의 도리 말씀과 비슷한 비유라

하겠습니다.

 

힌두교의 성정 <<베다>>에서도 인간이 백만 년을 수행해 날로

향상만 한다면 해탈을 이룰 수 있다고 합니다.  퇴전하지 않고 인신

을 받아 올 때마다 그렇게 백만 년을 수행할 수만 있다면 누구

나 윤회서 초탈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물론 항상 태어날 때마다 공부해서 향상만 계속한다면 그렇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전생에 공부를 잘해서 상당 수준의 성과

를 얻은 후 다시 원을 세워 인간 몸을 빋아났다 해도 반드시 공

부만 하는 삶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백천 생을 살면서 지은 악연

인연을 따라 방황하기도 하고 혹은 나락에 떨어져 형편없이 망가지

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붓다 이루는 데까지는 3대아승지겁이 걸린다는

교가의 말이 맞습니다.  어쩌다 한 번 실수하여 여자에게 빠지면

공든 탑이 무너집니다.  짐승 몸을 받아 나기도 하고, 지옥에 떨어

지기도 합니다.  수행인은 이런 무서운 경우를 명심하여 뼈에 새기

고 정진해야 합니다.

 

 

 

 

 

불교 위대한 가르침이여!

 

  

교학하는 이들은 불교의 무진연기 무아사상 등이 불교의 위대

한 점이라고 합니다.  법계의 위대한 경전 화엄경의 일중다一中多

사상, 보살의 원행願行 사상이나 신비로운 밀교사상, 정토삼부경에

기초한 정토사상 역시 위대한 발견이라고 하여 불교가 제일이라

주장합니다.  시방삼세를 회통하는 불교의 심오한 교의와 철학 사상

은 과연 위대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한편 불교경전의 방대함도 다른 종교의 그것과 비교해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아함부만 해도 1만 8천여의 경들로 이뤄져 있

습니다.  그리고 방등, 반야, 화엄 등의 수많은 대승경전들이 있습

니다.  티베트 쪽으로 흘러 들어간 밀교의 그 수많은 분량의 경전

들까지 합한다면, 분량에서도 가히 위대한 종교라 아니 할 수 없

습니다.

 

또한 불교는 그 화엄사상에서 현대물리학의 상대성이론이나 양

자역학을 불 수 있어서 '과학의 과학' 이요, 선  반야  구사 유

식철학을 보면 가히 '철학의 철학' 이요, '학문의 학문' 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토, 밀교 사상에서 본다면 '종교의 종교' 입니다.

 

과거 장엄겁 동안에 일찍이 불과를 이루셨던 삼천대천세계의 그

수많은 붓다들이 동서남북 상하에 헤아릴 수 없이 많고, 불신佛身

은 없으나 불격을 갖춘 상수上首 보살님들도 무수히 계십니다.  그

래서 불교는 가장 힘이 있는 위대한 종교인 것입니다.

 

극락세계 위의 동방 약사부처님 정토정유리세계와 그 외 시방十方

에 산재한 정토세계에 있는, 무수 무량한 8지 이상 10지까지의

정토보살들과 상품등각 보살들의 수효는 더욱 많습니다.

 

이뿐입니까? 불 보살들을 받드는 성중들은 얼마나 되고요?  일

백사위 화엄성중의 대군단만 해도 어마어마합니다.  사람이 죽어

서 가는 명부와 지옥도 지장보살의 수중에 있습니다.  이렇듯 불교

는 위대합니다.  힘이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  자랑스러운 불자라는 긍지를 갖기 바랍니다.

 

'붓다 중의 붓다' 요, '부처님 중의 부처님' 은 다름 아닌 석가모

니부처님이십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은 삼계의 왕이십니다.  그리고

다음은 다보불입니다.  삼계의 지존이십니다.

 

붓다마다 좌우보처 보살이 배정됩니다.  그리고 붓다마다 50명

이상의 아라한급 성중이 호신합니다.  황금색 장삼과 빨강 가사 그

리고 불자佛子가 주어집니다.

 

불교는 위대합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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