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 13일 토요일

≪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Ⅱ≫특별부록 영산불교 현지사의 삼악도 중생구원 특별의식

 특별부록

영산불교 현지사의

삼악도 중생구원 특별의식

 

1. 부처님의 자비로

지옥중생 특별공양

2. 부처님께서 주관하시는

현지사 천도대재

 

 

 

1. 부처님의 자비로 지옥중생 특별공양

 

영산불교 현지궁 현지사에서는 정해년 7월 백중 우란분재일을 맞이하여 인류 종교 문화역사상 매우 뜻 깊고 희유한 지옥중생 특별공양 의식을 가졌습니다. 붓다 회상이 아니고서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이 날 특별행사는 영산불교의 창건(정해년 음력 6월 15일)을 기념하여 부처님께서 현지궁 두 분 큰스님의 간청을 받아 주신 대자비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현지궁 두 분 큰스님께서 집전하신 이 날 특별공양 법회장에는 우리 교주 불 세존과 오여래부처님 그리고 지장보살님과 삼천대천세계 수많은 붓다님이 오셨고 열시왕께서도 임석하셨습니다. 현지궁 수좌스님들과 1천여 명의 신도들이 동참하였습니다.

 

이 날 특별법회는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20분간 지옥의 벌을 멈추고 지옥 중생에게 편안한 마음으로 한 끼 배불리 먹을 수 있도록 공양을 올린 다음 자재 만현 큰스님께서 지옥 중생들에게 법문하는 순서로 진행 되었습니다.

 

가혹한 벌을 받느라 너무나 처참하고 일그러진 지옥 중생들의 몰골을 보면서, 부처님들도 현지궁 두 분 큰스님들도 눈물을 흘리셨고, 동참한 스님들 신도들 모두 지옥 중생에 대한 연민과 부처님에 대한 감사와 감동에 겨워 흐느껴 울었습니다.

 

현지궁에서는 이 세계초유의 우주적 특별이벤트를 사부대중과 인연있는 모든 분들에게 알려 그 날의 감격과 감동을 함께 나누고, 죄짓지 말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되새기는 계기로 삼고자 간단한 내용을 이 책자에 싣습니다.

 

 

 

부처님의 자비로 지옥중생 특별공양

 

영산불교 현지궁에서는 정해년 우란분재일을 맞이하여 지옥중생에게 공양을 올리는 인류 종교·문화역사상 가장 희유한 행사를 가졌습니다. 이 날 행사는 영산불교 현지궁의 교단 창단을 기념하기 위하여 현지궁 두 분 큰스님이 부처님과 지장보살님께 간청하여 허락을 받은 것입니다.

 

강원도 춘천시 사북면 지촌리, 이 조그만 산골 마을에서 사바세계 70억 인구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우주적 이벤트가 열렸습니다. 어느 눈 뜬 성자 있어 이 꿈같은 사실을 알아볼 수 있으리오. 어느 선근 깊은 불자 있어 이 사실을 믿을 수 있을까요? 이 세상 어느 절에서 꿈에서나마 이런 행사를 생각인들 할 수 있겠습니까?

오로지 이 뜻 깊고 뜻 깊은 우주적 행사를 비방하고 비웃는 죄업을 짓지 않기만을 진심으로 바랄 뿐입니다.

 

이 우주가 중생들의 업력에 의해 창조되고 유지 상속되어 가듯 이 중생들의 착한 업이 모여 천상세계를 만들었고 악업이 모여 지옥을 만들었습니다. 지옥의 벌이 집행되는 것도 모두 이 악업의 업력에 의한 것입니다. 지옥은 죄업과 형벌의 경중에 따라 가장 중한 것부터 극무간지옥, 무간지옥, 중지옥, 하지옥, 대기지옥의 다섯 등급으로 구분합니다. 중지옥 이상은 무서운 형벌이 가해집니다. 하지옥은 벌이 가볍고 대기지옥은 벌이 없습니다.

 

특히 무간지옥과 극무간지옥은 붓다 회상을 만나지 않는 한 영원히 빠져 나올 수 없는 소름끼치는 형벌의 장입니다. 하나의 지옥은 사바세계만큼이나 넓습니다.

 

이 날 행사에서는 부처님의 자비로 20분간 지옥문을 열고 지옥벌을 멈추게 한 후 푸짐한 음식과 각종 과일 등으로 마음 편히 한 끼 공양을 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평소 지옥 중생에게는 음식 먹는 것조차 형벌입니다. 목이 말라 물을 마시면 속에서 뜨거운 쇳물로 변해 버립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광명을 놓아주어 지옥중생들이 우리 현지궁의 모습을 다 볼 수 있게 했습니다. 이 날 공양에 동참한 분들의 명단과 공덕은 명부전 열시왕께 올라갔습니다.

 

드디어 현지궁 두 분 큰스님과 수좌 일동, 그리고 현지궁 단월들의 간절한 발원에 의해 지옥문이 열렸습니다. 항하사 수의 지옥 중생들은 공포에 질린 처참한 모습이지만 오랜만에 너무도 오랜만에 편안한 마음으로 사바세계의 공양을 들었습니다.

 

이 날 자재 만현 큰스님은 수많은 지옥 중생들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지옥 중생들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에 대해 법문을 했습니다. 사바세계 외의 영계靈界 중생들에게 하는 최초의 법문이라 더욱 감회가 깊었습니다. 이 날 법문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여러 지옥 중생들, 부처님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지중한 죄업을 지어서 대지옥에 떨어져 지옥을 윤회하는 지옥중생이라 하더라도 부처님의 위신력이 되는 여래의 명호를 잠시나마 떠올릴 수 있다면 즉시 그곳의 명을 버리고 인간 혹은 하늘에 태어난다고 하셨습니다.”

 

“여러 지옥 중생들, 지난날의 잘못을 진심으로 참회하고 부처님 말씀대로 착하고 바르게 사는 불자 될 것을 발원하면서 지옥을 관장하시는 남방교주 시방여래불 지장보살을 일심으로 칭명하기 바랍니다. 그러면 시방여래불 지장왕보살의 위신력으로 거기 지옥에서 벗어나서 인간이나 하늘 천상에 꼭 환생하거나 태어날 것입니다.”

 

우리 현지궁 스님들과 단월들이 지옥 중생과 함께 열심히 지장보살 칭명염불을 하는 중 어느덧 20분의 시간이 다 흘러갔습니다. 참석자들의 안타까움과 탄식과 눈물을 뒤로한 채 태산처럼 육중한 그 지옥의 문은 닫히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지옥 중생들의 몰골이 얼마나 처참했던지 차마 그 얼굴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벌을 받느라 넋이 나가서 자기가 누구인지도 모를 지경이었습니다.

이 날 지옥문을 열 때 현지궁 큰스님들께서 우셨고 우리 부처님께서도 따라서 눈물을 흘리실 정도였습니다. 이 날 공양법회에 참석한 많은 분들은 불쌍한 지옥 중생을 생각하며, 부처님의 자비에 감격하며 울고 또 울어 법회장은 온통 울음바다가 되었답니다.

 

지옥 중생들이 부처님 생각을 한 생각만이라도 떠올릴 수 있다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조금 전 큰스님의 법문에 나와 있지만, 지옥의 벌이 그토록 가혹하게 간단없이 집행되기 때문에 실제로 한 순간이라도 부처님 명호를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사바세계의 감옥은 여기에 비하면 천상입니다.

또한 이 날 행사에는 영산 당시 우란분절일에 어머님을 천상으로 천도해 드린 목건련존자가 한국에서 사람 몸 받아와 참석하여 더욱 뜻 깊은 행사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저 지옥 중생 중에 내 조상, 부모, 아내, 형제, 자식 그리고 존경하는 스승과 친지들이 없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금생만의 이야기가 아님을 불자라면 알아두셔야 합니다. 나의 조상을 거슬러 30대만 올라가도 21억 명이 넘는 조상들이 연결되어 있다고 합니다. 21억 명 중에 한 분만 계시지 않아도 오늘날의 나는 탄생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30대가 아니라 수없는 조상 세대가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나에게 연결되어 있는 조상들의 수는 상상을 초월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내가 태어나기 위해서는 지구촌의 모든 인류가 직·간접적으로 다 동원 되었다고 해도 크게 무리는 아닐 것입니다.

 

≪부모은중경≫에는 부처님께서 낯선 한 무더기의 마른 뼈를 보시고 오체투지 절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를 보고 놀란 아난존자가 그 이유를 여쭈어 보자 부처님께서는 이 한 무더기의 뼈는 혹시 나의 전생의 오랜 조상이거나 부모님의 뼈일 수도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대승본생심지관경≫ <보은품>에서도 부처님께서는 세상에서 갚아야할 네 가지 은혜 중 중생은衆生恩을 설명하면서 중생이 한없는 윤회를 거듭하는 동안 서로 부모가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무시 이래 다겁생을 살아오면서 저 모래알처럼 많은 지옥 중생들 중에서 내가 은혜를 갚아야 할 부모 조상, 배우자와 자식, 형제와 친지가 반드시 있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 불교 연기법의 관점임을 이 기회에 일깨워 드리고 싶습니다.

이 날 동참하신 분들은 생면부지의 지옥 중생에게 공양을 올린 것이 아니라, 선대 가족과 친지에게 공양을 올린 것입니다.

 

사랑하는 불자 여러분!

우리는 이 뜻 깊은 날을 기해서 죄를 지으면 안 된다는 교훈을 다시 한 번 새겨야 하겠습니다. 천도의 중요성과 그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고 실천하는 계기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업력의 우주 이법에 따라 집행되는 지옥의 벌을 멈추게 하고 지옥 중생들에게 공양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신 부처님의 너무나 크신 공덕과 위신력과 대자비를 다시 한 번 찬탄하면서 오체투지로 고마운 마음을 표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이 행사는 불과 이룬 큰스님의 발원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공양에 동참한 여러 제자들의 공덕이 밑거름이 되었음은 물론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이 날의 행사가 우리에게 주는 값진 교훈입니다.

 

사랑하는 선남자 선여인 여러분!

70억 사바세계 중생들에게 다시 한 번 강조 합니다. 죄 짓지 마십시오. 절대로 죄 짓지 말고 착하게 살아가십시오. 죄를 지으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는 것이 인과응보의 우주 이법입니다.

지난 날 지은 죄에 대하여는 간절한 마음으로 참회하십시오. 이렇게 하는 것이 여러분이 사는 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여러분이 죄짓지 말고 착하게 살고 진리를 깨우쳐 붓다 되도록 인도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십니다. 이것이 일대사 인연입니다.

 

 

 

출처 :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Ⅱ≫ 광명 만덕, 자재 만현 저

펴낸곳/현지궁 현지사 영산불교사상연구소

 

 

 

 

 

≪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Ⅱ≫25장 어느 날 아침 법문 -현지궁 제자들에게

 25장

어느 날 아침 법문

-현지궁 제자들에게

 

여기만큼

계율 청정한 데 어디 있을까?

여기만큼

팔정도 수행 하는 곳

어디 있단 말인가?

부처님들 눈을 피할 수 없고

두 큰 사부님 지도 말씀에

법 아닌 생각 그리고

게으름 피울 수 없다.

한 생 태어나지 않았다 생각하고

열심히 정진하라.

 

 

티베트의 전설적인 고행의 성자 미라래빠, 히말라야 높은 지대 동굴에서 수행하고 있는 500살, 1000살, 2000살 된 초인들과 몇몇 힌두의 성자들을 묘사한 글에서 주목할만한 글귀를 읽을 수 있었다.

 

‘…… 그의 등 뒤엔 찬란한 후광이 방사되고, 온 몸은 불꽃에 휩싸인 듯 - 빛의 존재다.’

‘그들 클리어요가를 완성한 자들은 10억Watt의 빛光을 낼 수 있다.’

 

영산불교 현지궁으로 출가해서 공부하고 있는 내 사랑하는 제자들아!

윤회의 감옥에서 벗어나기를 바라거든 세속을 포기하라. 잘 들어라! 밀장을 건드리지 않으려 말을 아끼지만 오늘 아침 제자들에게 조금 일깨워 주리라.

 

이곳은 우리교주 불 세존과 약사부처님, 준제보살님, 문수, 보현, 관음, 지장의 큰 부처님께서 상주하시고, 현신하시는 붓다 회상이니라. 석가모니부처님께서 대열반에 드신 이후 처음이다.

 

500살, 1000살, 2000살 먹는다고 해서 보살이 되고, 붓다가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렇게 장수하는 법을 익혀 사는 것은 자연의 이법을 거스르는 것으로서 언젠가는 열시왕의 논죄를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정토의 보살들 몸에서는 저 초인들보다 맑고 청정한 광명이 눈부실 정도로 그 광휘가 찬란하단다. 더욱 불과를 이룬 모든 붓다들의 그 아름다운 몸에선 보살이 낼 수 없는 부사의한 빛을 방광한단다.

 

모든 붓다는, 절대계의 모든 부처님은

 

첫째. 저들히말라야의 초인이 지니지 못한, 상품보살도 갖추지 못한 32상 80종호의 아름다운 상모를 구족하고,

 

둘째. 불신의 여러 군데에서 빛을 방사하여 삼천대천세계 어디든 비출 수 있다. 그 빛은 백천억 묘한 빛깔의 광명, 백억종광명, 백천억 나유타 아승기의 청정한 광명≪화엄경≫이란다. 안팎이 드러난, 투명하고 영롱하여 깨끗하고 청정하고 아름다운 빛이다.

 

셋째. 붓다의 가슴에서 만卍자를 이루는 빛이 방광을 하고

 

넷째. 모든 붓다는 자기의 청정법신불을 절대계에 두고 이 우주를 언제나 태양이 대지를 비추듯 그리 비춘다. 10억Watt×10억×10억이 비교가 되겠는가?

 

다섯째. 따라서 붓다들은 순도 100%, 1000% 그리고 완전한 빛의 존재이시다.

 

여섯째. 이 빛은 지혜요 힘이다. 언제 어디서나 빛을 내어 필요하다면 칼로, 불로, 오랏줄로도…… 혹은 중생의 업장을 씻어주는 등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그런 부사의한 빛이다.

 

그리고 또한 모든 부처님들은

첫째. 불신이 깨끗하고 청정한 억종광명 빛으로 이루어졌기에 미래제가 다하도록 수명은 무한하다.

 

둘째 백천삼매에 자재하심은 물론, 붓다의 삼매 - 대적정삼매에 항상 들어계신다. 그러므로 붓다는 언제나 극락의 극락을 수용, 환희세계에 미래제가 다하도록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셋째. 시방 그리고 삼세에 출세한 모든 붓다님들은 빛으로 상속되어 계신다. 모두가 한 몸이시다. 한 형제요, 한 식구요, 하나의 가족 같은 유대를 지니신다.

 

넷째. 아라한 내지 상품보살이 나툴 수 없는경에 아라한, 보살은 백천만의 화신을 낸다 했으나 그것은 잘못된 기록이다 무수한, 실로 천만억 화신을 내어 삼천대천세계의 중생을 섭화하시는 것이다.

다섯째. 지혜와 자비 그리고 복덕을 완전히 구족하신다. 복덕으로 말하면 이 땅을 다 살 수 있는, 중생이 상상할 수 없는 복력이다.

 

여섯째. 항하사의 신통을 자재하신다. 붓다는 탐·진·치가 한 티끌도 용납됨이 없이 모두 녹아버리고, 백천만겁의 업장이 다 녹아 소멸되고 탁한 습의 기, 악의 기가 다 녹아 없어지고, 억겁의 빚·은혜가 다 갚게 되면 자기의 불신을 절대계에 얻을 수 있다.

 

그리해서 지순한 상모를 갖추게 되었고, 명징한 지혜 갖추셨고, 끝없는 자비가 있으시고, 힘 있는 영원불멸의 대생명을 얻어 우주적 자아를 완성한 분들이시다.

 

제자들아!

부처님께서는 미간 백호상의 광명만을 놓으시는 것이 아니고 손가락 끝으로 입으로 발바닥으로 몸 전체로 청정한 억종색깔의 광명을 한없이 쏠 수 있고 짚고 다니시는 석장을 통해 광명을 놓으셔서 삼천대천세계 곳곳을 비출 수도 있단다.

 

지난 달 음력 25일 삼천대천세계 모든 불 세존께 공양 올리는 현지궁 대재일에는 춘천 현지사에서 대공양을 마치고 부산 현지사 포교원 스님들과 100여 명의 신도들에게 큰 축복을 내리셨단다. 춘천 법당에서 부처님께서는 빛덩어리가 되어 부산 스님들과 신도들에게 광명을 놓으시어 업장을 씻어주셨다. 씻겨 내리는 업장의 먹물이 실로 도랑을 이루었단다.

 

여러 부처님들과 성중들도 마무리 작업에 동참하신 것은 물론이다. 이 날 참석한 신도분들은 과거 생에 크게 부처님께 선근을 심은 이들일 것이다.

 

분명 우리 현지사 스님들, 신도분들은 선택된 불자들이다. 나는 우리 현지사 부처님이 주관하시는 천도재 때 재주들의 업장을 씻어주시는 장면을 대할 때면 내 아는 도반 스님들 그리고 형제 조카들, 지난 날 나에게 잘 해 주었던 신도분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안타까운 심정 금할 수 없다.

복이 없는 사람들이다. 여기 와서 부모 조상님께 효를 다할 수 있는 천도재 한 번 모지시 않는다. 업장까지 씻어주시는 이 부사의한, 역사에도 세상에도 없는 이런 기회를 만나지 못하는 그들에게 한없는 연민의 정이 솟는다.

 

제자들아! 너희는 전생에 선근 공덕을 많이 지었기에 붓다 회상을 만났다. 자력·타력으로 반드시 윤회생사를 벗어날 것이다.

 

힌두 베다Veda에서 사람은 백만 년 동안 향상만 하는 수행으로만이 윤회를 벗어날 수 있다 했다. 그러나 너희들은 부처님의 가피를 받아 정토에까지 왕생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현지궁 만난 신도들은 역시 가끔 가끔 특수한 법회 때그리고 천도재 모실 때또는 나의 설법 때 부처님의 광명을 만나 업장이 씻겨 나감으로써 무주고혼이나 지옥, 아귀, 축생……으로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대반열반경≫ 등 대승경전을 읽어보기 바란다. 거기 부처님 말씀이 나의 이 말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리고 알아두어야 할 문제가 있다. 그것은 기독교의 성서Bible에서 인격적 창조주 하느님을 I AM Who I am이라 한다. 하느님은 스스로 있는 자존자라는 것이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공空이라 한다. 불생불멸의 존재의 근원이다. 이것은 또 무소부재하며 우주에 편만해 있고 시공을 초월해 있는, 우주라고 하는 무한 무변의 창고에 꽉 차 있는 힘Energy이다. 수긍삼제竪亘三際횡변시방橫徧十方의 우리 본래의 생명이다. 스스로 존재하는 일심진여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생각 이전의 비인격적 이법이다. 생각 이전이기 때문에 생각이 없다. 사량 분별을 떠나 있다. 따라서 의지도 없는 것이다. 다만 생명이요 조화이며, 사랑의 기氣이기에 잘못 인격화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인격이 아니고 비인격이다. 깨끗하고 청정한 빛이다. 이 빛은 영원, 절대, 완전, 지혜, 사랑, 생명의 기氣이면서 이법이다. 연기법이다. 우주의 진리인 것이다.

 

억겁을 두고 청정과 무소유로써 보살도10바라밀을 완성한 대수행자붓다의 평등성적 대광명의 지智가, 우주의 진리, 체성體性과 더불어 계합한 것이 법신불이다.

그 붓다는 빛존재의 빛, 진리의 빛보다 밝고 청정하면서 큰 힘이 있어 우주의 이법과 합일이 되는 것이다. 진리의 몸이 되는 것이다. 우주적인 몸이 된다. 법신불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법신불을 원인으로 해서 다겁생 동안 닦은 공덕의 뭉치가 보신불로 절대계에 자리하는 것이다.

 

이것이 지복의 몸이다. 사바세계에서 불과를 이룬 육신 속의 네 영체가 청정한 빛덩이가 되어서 자기의 보신불, 법신불과 하나가 되면 이것이 진실로 하느님인 것이다. 진짜 하느님은 부처님인 것이다.

붓다는 반야공을 완전히 쓸 수 있기에 붓다의 능력은 우주적인 것이다. 석가모니부처님의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은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절대계의 모든 붓다들이 그 속으로 계합, 흡수, 합일된 몸이기에 그 크신 능력, 위신력은 가히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부처님 이후 수보리·사리불 존자불과를 증득만이 아시는 일이다. 저 유명한 인도의 대학승 용수나 무착도 불과를 이루지 못해서 법신불이나 보신불에 대해서 완벽하게 알 수 없었다.

 

다시 말한다. 이곳 현지궁 현지사만이 삼계의 왕이시오 남섬부주의 대교주이신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와 계시는, 상주하시는 부처님 회상이다. 그리고 여러 큰 부처님들께서 상주하시거나 현신하시는 사바 유일의 성지 중 성지이다. 그 많은 절이 있어도 이곳에 와서 공양을 드신다.

 

이 사실을, 이런 말을 다른 절 스님들은 믿지 않을 뿐 아니라 도리어 반박할 것이다. “부처님께서 아니 계신 곳 있나? 모든 절, 어디에나 다 계신다. 부처님은 상相을 떠나 있는 것. 온다거나 간다거나 앉는다거나 눕는다고 하면 불법을 모르는 이의 삿된 말이다. 부처란 어디로부터 오는 바도 없고 또한 가는 바도 없으므로 여래라 하는 것이다.”라 하면서 말이다.

 

잘 들으라. 제자들아, - 부처, 여래란 가고 옴이 없이 여여부동하다는 말은 법신여래佛를 두고 하는 말이다. 저들은 분명 법신불과 반야공·I AM·일심·진여의 차이를 모르고 있다. 공·일심은 시방과 삼세에 두루 편만해 있다. 동시에 시공을 초월해 있다.

부처님의 법신佛은 그것과 계합한 무형의 우주적인 빛의 몸이시다. 이 법신은 지혜의 빛을 본질로 한다. 사량, 분별, 의지가 없다. 평등성적 대지智이다.

 

그리고 잘 들으라.- 반야공般若空·법신불의 젖줄로 자란 지복의 몸, 보신불은 불과 이룬 이에게 법문을 해주시고, 업장을 씻어주시고, 대적정삼매에 들고 나고 하시는 몸이다.

32상 80종호를 갖추어 계시는 부처님의 깨끗하고 청정한 백종오색광명 빛으로 이루어진 몸이다. 영원히 멸도할 수 없는 몸이다.

 

눈, 코, 귀, 입, 몸 - 다 우리와 같이 갖추어 계신다. 우리 중생을 사랑하시어 천만억 화신을 내어 인人·천天을 교화하신다. 32응신으로 그 시대, 그 지방 근기에 따라 천인 앞에 나투신다. 이 보신부처님이 진짜 우리가 말하는 살아 숨 쉬는 부처님이시다. 항상 절대계에 계시며 대적정삼매에 들어계신다.

간절히 당신의 이름을 부르면 본불보신의 변화신으로 나투어 가시거나 눈 어두운 중생에겐 화신을 나투어 가시는 부처님이시다.

 

이 보신의 부처님, 적멸의 절대계에 계시는 이 진짜 부처님을 영산 당시 이래 그 누구도 뵙지를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해서 불교는 오늘처럼 왜소한 아라한 불교, 기껏해야 깨달음의 불교로 전락한 것이다. 본래는 우주적 메타종교, 이것이 불교의 진면목이요 정법 불교이다.

현지궁 현지사에서 우리는 왜소화된 불교를 불교의 정형으로 복원하고 있다 이 말이다.

 

이곳은 늘 말하지만 다겁생 동안 보살도를 완성해서 금생에 불과 이루신 두 분의 붓다, 쌍불雙佛이 출세한 곳. 그리해서 모든 절대계의 부처님들께서 현신하신다. 한 달에 최소한 2~3번은 제자들의 업장을 씻어주신다.

 

오늘 청정법신 비로자나부처님삼천대천세계 모든 부처님의 사실상 법신체께서 우리 현지사 제자 모두의 업장을 많이도 씻어주셨다. 백 생, 천 생을 닦아도 어찌할 수 없는 그런 업장을 소제掃除해주셨다. 이런 축복이 종종 있다면 여기 우리 제자들 전부는 정토로 왕생 안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제자들은 과거 생에 큰 선근 공덕으로 이런 붓다 회상, 붓다의 교단을 만난 것이니 여러분은 여기 출세한 붓다님, 그리고 여기 상주하시는 부처님을 잘 모시고 보현행원을 몸소 행해야한다. 그리하여 자력과 타력으로 모두 윤회의 쇠사슬을 끊고 삼계를 탈출하여 정토에 왕생해야 한다.

 

서방정토에 왕생한다면 이제 미래가 보장된다. 성불이 보장되는 것이다. 거기는 불퇴전이기 때문에 설사 사바에 내려와서 보살행을 하다 업을 짓는 일이 있다 해도 자기 자리로 갈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이 경우 정토의 대기에서 주어진 시간동안 참회해야 한다.

 

세세생생 붓다 회상 만나기를 발원해야 한다. 붓다 회상을 만나면 부처님의 가피로 윤회생사에서 모두 벗어날 수 있기에 그렇다. 여기서 정토왕생 못하는 이는, 다음 생에도 부처님 회상 만나기를 발원하라.

언제나 붓다의 교단을 만나려면 첫째 음계, 중계를 잘 지켜야 한다. 부처님께 선근공덕을 지어야 한다.

‘저 얘는 희망이 보인다. 가능성이 보인다-.’

이런 평가를, 점수를 따서 붓다님들로부터 낙점 받아야 한다.

 

사랑하는 제자들아, 박복한 중생은 우리 교단에 들어와서도 고된 수행을 견디지 못하고 떠나는 자이다. 이 부처님 회상을 뒤로하고 세상에 나가서 산다 하면 그 날로부터 악도로 빠질 죄업을 짓고 살게 될 것이요, 여기서 하루 더 살수록 그만큼 극락정토에 가까이 나아갈 것이라고 나는 단언한다. 여기만큼 계율 청정한 곳 어디 있을까? 여기만큼 팔정도 수행을 하는 곳이 어디 있단 말인가? 부처님들 눈을 피할 수 없고 두 큰 사부님 지도 말씀에 법 아닌 생각 그리고 게으름 피울 수 없다. 한 생 태어나지 않았다 생각하고 열심히 정진하라.

 

서릿발 같은 불 보살님의 엄명이시다. 동성연애하거나 자위행위 하지 못한다. 출가 수행자가 이런 사음하는 것을 이곳에선 용납하지 않는다. 무간지옥행할 것이라는 부처님의 교시가 있으시다.

우리는 누구나 인륜 도덕 그리고 국가의 법질서를 지켜야 하고 저승에서도 우리 중생은 그 쪽 법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부처님께서는 이 세상에나 저 세상 세계윤회 안이나 밖 각각의 세계의 법을 지키지 아니하는 것을 가장 싫어하신다. 불자들이 명심해야 할 사항이다. 불교의 계율로 반듯해지면 이승이나 저승의 법질서를 잘 지키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가끔 ≪아함경≫을 읽는다. 곳곳에서 여기 우리 교주 불 세존 부처님의 말씀이 쓰여 있음을 발견할 때면 살아 숨 쉬는 영산 당시 부처님임을 실감하면서 너무도 기쁜 눈물 흘린단다.

 

그리고 모습이나 거동 하나하나 너무도 대자대비 하셔서 어떻게 흉내를 내보려 해도 되지 않는다. 한 시도 흐트러짐이 없으시고 지난 11년 동안 한 가지도 헛된 말씀 하지 않으시고 한 번 하신 말씀은 절대 바꾸지 않으시고 약속한 것 들어주지 아니한 것 없으시다. 해주시는 법문 말씀은 지혜와 진실 아님이 없었다.

 

부처님은 곧 진리의 몸이라는 것을 소신 있게, 강하게 만 사람 앞에서 증언할 사람 또 있을까?

≪아함경≫에서 붓다는 곧 법진리이라 했는데, 그 누가 이곳 두 분 큰스님 이상으로 확신한단 말인가? 현지사의 법신불, 보신불 해석처럼 불교 역사 이래 그 어떤 분이 법신, 보신에 대한 해설을 그렇게 구체적으로 한 적이 있었던가?

 

내가 쓴 ≪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Ⅰ·Ⅱ≫의 내용은 다시 고백하건대, 진실한 말이요 한 점 거짓 없는 법설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21세기에 탄생한 가섭 광명불 - 아난 자재통왕불, 두 붓다가 출현하여 부처님의 정법을 전도하는 메시지인 것이다. 중생을 위해서, 그들 모두를 살리고 싶어서 조금도 과장 없이 진실 그대로를 방편과 비유를 들지 않고 직설법으로 법문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특정 종교나, 다른 불교의 교파를 험담하고자 하는 마음 추호도 없다. 다시 말하지만 내가 본 견처見處를 그대로 전함이 보살행으로 안다. 내가 마땅히 해야 할 도리로 안다. 지구촌 인류 모두가 종교와 사상에 관계없이 정법의 품 안으로 들어왔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뿐이다.

 

 

출처 :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Ⅱ≫ 광명 만덕, 자재 만현 저

펴낸곳/현지궁 현지사-영산불교사상연구소

 

 

 

 

≪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Ⅱ≫ 24장 중견지도급에 있는 장년 불자들의 방문을 받은 자리에서

 24장

중견지도급에 있는 장년 불자들의

방문을 받은 자리에서

 

여러 법공양 중 최선의 공양으로

‘대중생고공양代衆生苦供養’이 있습니다.

중생의 아픔을

자기가 대신하여 받는 공양입니다.

만물萬物일체一體는 진리입니다.

사랑은 진리입니다.

 

 

여러 불자님들!

여러분은 인연법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우주의 이법이요, 진리입니다.

이 광대한 우주는 물질과 에너지, 두 가지 재료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에너지空大는 뿌리이고 만물은 나무와 같습니다. 모든 우주의 근원은 공입니다. 에너지와 물질은 무시무종의 공간 속에 존재하면서 연기의 법칙에 따라 생성·소멸을 반복합니다.

우주에서 생겨난 만물들이기에 크기나 모양이 다르더라도 모두가 제각기 하나의 소우주입니다.

맑은 하늘에 갑자기 구름 한 점 생기듯 인연 따라, 다만 인연 따라 일월성신日月星辰천체가 생성되고 사람이나 초목 군생까지 생겨났습니다. 물질만물은 오랜 세월을 거쳐 마침내 가루가 되고 가스가 되고 에너지로 돌아갑니다. 거기서 다시 싹이 돋아나 성·주·괴·공의 순환이 반복됩니다.

 

우리 인간은 실로 무시 겁 이래 1번 영체가 본체계에서 상대 경험세계로 나와 윤회생사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겁住劫중에서도 약 6천만 년 전 신생대 이후 사람이라는 육체 인간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지구는 그동안 많은 변화와 함께 진화를 거듭해왔습니다. 하늘 세계에서 인간계로 화생한 사람은 삶을 거듭하면서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이라는 나쁜 습성이 깊게 자리하게 됩니다. 물론 사람이나 만물의 불변의 본체는 일심진여요, 자성이요, 공입니다.

그것은 실체가 없어 가고 옴이 없습니다. 여여부동입니다. 분별 사량하는 생각이 없는 비인격입니다. 비인격인 우주의 이법입니다.

 

세 가지 무서운 마음

 

여러분!

이 몸, 나는 4대 5온으로 된 것입니다. 이것은 영원한 것도 참된 것도 아닙니다. 똥오줌을 담고 있는 피포대皮布袋이고, 죄악을 짓는 근본이기도 합니다.

부처님께서 불과를 이루시고 중생을 불안佛眼으로 살펴보시고 중생은 3가지 무서운 마음을 가지고 있음을 아시게 되었습니다.

1. 탐욕심 2. 성내는 마음 3. 어리석은 마음으로 탐·진·치는 시비 투쟁의 원인이 되고, 생사윤회의 근본이 됩니다.

 

“너희 중생들이 몸 가운데 무서운 독사 3마리가 있어서 네 몸을 뜯어먹고 있느니라. 독사 3마리 가운데서 가장 큰 어미 독사라고 하는 ‘탐욕심’을 죽여 없애야 하느니라.

이것은 독사 이상으로서 사자보다 총칼보다 무서운 것이니라. 이 세상에 가득한 죄악의 씨, 그 종자가 탐욕심에서 싹이 터 인류 사회에 수많은 죄악을 낳고,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일으켜 수만의 인명을 앗아 가느니라.”

 

부처님의 말씀입니다.

탐욕심은 중생이 삼악도에 떨어지고 육취六趣중에 윤회하여 온갖 고초를 받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이 됩니다.

 

대중생고공양代衆生苦供養_최고의 보시행

 

이 탐욕심을 죽이는 가장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혜의 눈을 떠 나의 것을 남에게 베풀어주는 것입니다. 어떠한 보답도 바라지 않고, 보시한다는 생각조차 없이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는 것입니다.

삼륜청정三輪淸淨의 보시가 돼야 합니다.베푸는 사람, 받는 사람, 베푸는 물건이 청정하고 착심이나 조건이 개입되지 않는 청정한 관계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소유에 대한 집착과 욕심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에 자기 것을 남에게 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화엄경≫ <보현행원품>에 보시공양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여러 법공양 중 최선의 공양으로 ‘대중생고공양代衆生苦供養’이 있습니다. 중생의 아픔을 자기가 대신하여 받는 공양입니다. 만물萬物일체一體는 진리입니다. 사랑은 진리입니다.

 

주인집에 귀한 손님이 왔습니다.

‘누가 자진하여 죽어서 손님 대접할 것인가?’하고 가축들이 모여 회의를 합니다. 닭, 개, 소, 말, 돼지가 모였습니다.

닭이 말합니다. “내가 죽으면 주인 식구들을 아침에 일어나게 하고, 식모에게 밥을 지을 시각을 알려줄 수 없으니 나는 죽어주고 싶지만 안 될 것 같다.”하면서 자기는 죽어선 안 된다 합니다.

개가 나섭니다. “나는 저녁 내내 도적이 들까봐 집을 지킨다. 내가 없으면 주인집에 당장 떼도둑이 들어 재물이 몽땅 털릴 판이니 나는 죽을 수 없다.”합니다.

소가 일어서서 하는 말 “나는 이래 뵈도 주인 집 농사를 다 짓고 있다. 봄, 가을에 논이며 받을 다 간다. 나 없으면 주인 어르신은 농사를 지을 수 없지.”하면서 자기는 정말로 죽으면 안 될 것이라 합니다.

말이 점잖게 목소리에 힘을 싣습니다. “나야말로 주인장의 온갖 짐을 실어 나른다. 시도 때도 없이 나는 마차를 끌고 나간다.”하면서 자기가 죽으면 주인집은 정말 문제라 하면서 자기는 죽어선 안 된다 합니다.

이때 돼지란 놈이 자세를 바로하며 의젓하게 말합니다.

“목욕물을 덥혀라. 내가 죽어 주리라. 할 일 없이 먹고 잠만 자고, 구정물 마신 은혜로 주인 위해 이 몸 바친다.”

산새들도, 들쥐 떼들도 손뼉 치며 “성자가 출세했다. 이 집에 위대한 이가 출세했다. 남의 목숨을 대신해서 하나밖에 없는 자기의 귀한 목숨을 내놓는다. 만세! 돼지보살님 만세!!”

 

어느 포로수용소에서 탈옥수를 끝내 붙들지 못하여 수용소 당국은 수용 포로 10명을 무작위로 뽑아 처형키로 했습니다. 어느 중년 포로가 마지막으로 호명되어 형장으로 끌려가면서 자기는 고향에 병약한 부모가 계시는데 돌아가서 봉양하지 못하고 여기서 죽을 수는 없다고 절규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모습을 본 어느 젊은 포로가 손을 들어 자기가 대신 죽게해 달라고 탄원을 했답니다. 그리고는 그 젊은이는 용감하게 처형자들의 대열에 그를 대신하여 끼어들었습니다. 수용소 당국도 이를 접수하여 그를 처형했다는 실화가 있습니다.

예수Jesus의 위대함은 인류의 원죄에 대한인류의 원죄가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대속代贖으로 십자가를 짊어진 숭고한 사랑에 있습니다.

우리는 만물과 더불어 동체同體이기에 불쌍한 이웃을 끝없는 자비와 사랑으로 돌보아야 할 것입니다.

 

지도급에 있는 불자들에게

 

지도급에 있는 불자 여러분은 반야공般若空을 투철히 이해하여 대승의 이타행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끝없는 사랑과 자비로 불쌍한 이웃을 위해 대중생고代衆生苦할 수 있는 보살이 돼야 합니다. 그래서 모두 정법의 복음을 가지고 그들을 불도로 이끌어야 합니다.

정법이 무엇인지 알고, 어떤 것이 진정한 불법인지를 알아서 그들을 부처님의 가르침, 교법으로 이끌어야 합니다.

 

삼취정계三聚淨戒

그리고 보살이 지켜야 할 계목戒目이 있습니다.

수행자로서의 자질 함양에 중점을 둔 소승계출가 수행자에 바탕하면서 중생과의 관계를 강조하는 ≪화엄경≫ ≪해심밀경≫에 있는 대승보살의 삼취정계三聚淨戒입니다.

모든 부처님의 계법을 잘 지키면서攝律儀戒, 착한 일이라면 서로 앞 다투어 열심히 행하면서攝善法戒, 반드시 섭중생계攝衆生戒라는 덕목을 마음에 새기고 중생을 정법으로 이끄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스스로 참회하고, 남을 용서하며 양보와 이해로써 중생과 동사同事하면서 그들을 구제하는 삶, 곧 대승보살의 행을 실천했으면 합니다.

탐심·진심·치심의 삼독심이 하자는 대로 방임하면 시기, 횡령, 강도, 절도, 살인, 방화, 상해, 치사가 판을 치는 죄악의 세상이 됩니다.

 

무아·자비의 인욕행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한느 바를 성취하고자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욕심 부리는 만큼 만족을 얻지 못하면 분합니다. 분노심이 일어나 상대를 위협하고 살해까지 해서라도 욕심을 채우고자 하는 것이 중생들의 모습입니다.

이 세상은 분하고 욕되는 일, 기막히고 어렵고 고통스런 일이 많습니다. 무안하고 분한 마음, 억울하고 원통한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탐욕심과 분노심은 참아냄으로써 그 불꽃은 꺼집니다. 잘 참고 참지 못하는 데 따라서 성공과 실패로 갈립니다. 세간의 이익을 얻기 위해서라도 우리들에게 인욕은 필요합니다.

윤회생사를 벗어나고자 수행하는 행자들은 보다 차원 높은 인욕행을 닦아야 합니다.

보살이 되고 붓다 되려면 무아의 인욕, ≪금강경≫의 인욕선인같이 인아사상人我四相이 끊어진 무아·자비의 인욕이 성취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 처마 끝에 떨어지는 물방울이 단단한 주춧돌을 뚫어내듯이 일심으로 정진하는 힘이 아니고는 윤회를 뛰어넘고 삼계를 탈출하기 어렵습니다.

여러 불자님들께서는 다겁생의 죄업장을 씻고, 갚지 못한 은혜와 빚을 정리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부디 부처님께 선근 공덕 심기를 간절하게 권하는 바입니다. 부모 조상께 효를 다해야 합니다.

한편으로 칭명염불 잘해서 선정에 들기를 발원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이끌어주시어 더욱 깊은 삼매에 들게 될 것입니다. 정토세계의 지혜 빛을 볼 것입니다. 서방정토에 왕생합니다. 보살행을 하고 선근을 심어나가기에 여러분은 기필코 생사를 벗어나고, 정토에 왕생하는 보살과를 증득할 것입니다.

 

 

출처 :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Ⅱ≫ 24장

      광명 만덕, 자재 만현 저

펴낸곳/현지궁 현지사-영상불교사상연구소

 

 

≪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Ⅱ≫ 23장 나라가 잘 살고 가정은 평안하기를

 23장

나라가 잘 살고

가정은 평안하기를

 

진정한 즐거움은

마음에 바람이 없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구하고 바라는 것이 있으면

바로 괴로움이다.

마음 속에 바라고 원하는 것을

다 놓아 버리면

세상의 즐거운 마음이

그 가운데 있으리.

 

 

탐욕심을 경계하라_생사윤회의 원인

 

나는 이미 세상 모든 사람들이 금생도 잘 살고 다음 생도 잘 살기를 바란다 했습니다. 다음 생만을 잘 살기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가능하다면 영원히 잘 살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금생도 다음 생도 영원히 잘 살려면 생사윤회의 원인이 되는 탐욕심을 끊어야 합니다. 사실 욕심이란 것은 그것을 채움으로써 충족되는 것이 아니라 버림으로써 채워집니다.

우리 몸속엔 무서운 독사 세 마리가 있어서 우리 몸을 늘 뜯어먹고 있습니다. 가장 큰 어미 독사가 탐욕심이라는 것입니다. 살생을 하고 도둑질하고 사음·망어로 큰 죄악을 범하지 않으려면 탐욕심을 죽여 없애야 합니다.

이 세상에 가득한 죄악의 씨, 그 종자가 탐욕심에서 싹이 틉니다. 그래서 이 세계와 인류 사회에 살벌한 투쟁, 무서운 전쟁이 전 세계를 휩쓸기까지 합니다. 중생이 삼악도에 떨어지는 가장 큰 원인도 인색하고 탐하는 마음에서입니다.

인생은 공수래 공수거空手來 空手去입니다. 빈 손으로 와서 빈 손으로 가는 것입니다. 이 점 우리는 유념해야 합니다.

 

요즈음 ≪아함경≫을 보면서 남다른 감회에 젖습니다. 영산 당시 부처님의 말씀들을 2600년이 지난 오늘 부처님께 직접 나에게 들려주시기에 생생한 부처님의 원음原音 법문이 되살아나는 듯하여 환희심이 더한 것 같습니다.

아래의 말씀은, 불 세존원만보신 노사나불께서 가끔 하시는 법문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누누이 말했구나

윤회의 굴레는 한이 없다고

무지에 덮혀 있고, 욕망에 얽혀 있어

그 시작을 알 수 없다고.”

 

“비유로 말한다.

짐승을 끈으로 기둥에 묶어 놓으면

끈을 끊지 못하기 때문에 기둥을 빙빙 돌면서

서기도 하고 앉기도 하며 눕기도 하지만

기둥을 떠나지 못한다.

육신에 대한 탐욕을 버리지 못하고

육신에 대한 애착을 벗어나지 못하므로

육신에 따라 윤회한다.”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것이 즐거움이요

욕심을 채우는 것이 즐거움이라고 말하지만

세상은 자기 뜻대로만 되는 것이 아니니

 

진정한 즐거움은 마음에 바람이 없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구하고 바라는 것이 있으면

바로 괴로움이다

마음 속에 바라고 원하는 것을 다 놓아

버리면 세상의 즐거움 마음 그 가운데 있으리.”

 

“자신의 소유가 아닌 것은

집착하지 말고 다 버려라.

내 것이 아닌 것을 모두 버릴 때

세상을 소유할 수 있으리.

만약 어떤 이가

뒷동산에 있는 나뭇잎을 가지고 간다고 했을 때

왜 나뭇잎을 가졌느냐고 그와 싸우겠는가.

수행하는 사람들도 그와 같아서

자기 소유가 아닌 물건에 대하여 애착을 버려야 할 것이니

버릴 것은 버릴 수 있어야 마음이 평온하리라.”

≪잡아함경≫

 

잘 사는 길!_부처님의 가르침 속에 있다

잘 산다는 것은 물질적으로 풍요한 생활, 세상 공부 많이 하고 높은 관직에 올라가 누리는 이 몸뚱이의 안락한 삶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이것을 부정적인 것이라 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부처님 가르침에 따라 아야 합니다. 여생과 다음 생이 보장 안 되는 탐욕심에 물든 삶을 경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겁생으로 내려오면서 입은 많은 은혜와 갚아야 할 빚이 많습니다. 또한 크고 많은 죄악을 짓고 살아온 것이 사실입니다.

금생에는 그 많은 빚을 갚고, 업을 씻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나쁜 습기도 정화하고 악의 기氣도 지멸止滅해 가야 되겠습니다. 탐욕심, 진에심, 우치심의 삼독심을 비롯해 크고 작은 번뇌 역시 줄여가는 수행자적인 삶을 살아야 하고 칭명염불 열심히 하면서 인생을 살면 남은 생 삼재팔난 만나지 않고 나쁜 병 얻지 않고 다음 생도 복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윤회를 벗어나고, 정토에 왕생합니다.

 

먼저 붓다 회상에 와서 부처님께 귀의하고 부모 조상님께 효부처님께서 주관하시는 천도재를 다하며, 불 보살님께 공양을 드리는 불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부처님께 선근 공덕을 많이 지으십시오. 이것이 언제나 잘 사는 확실한 답입니다. 금생도 잘 살게 되고 다음 생도 잘 살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입니다.

건강하고, 총명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훌륭한 자식을 원하거든 ‘관세음보살 태교법’을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관음경≫에 부처님 말씀이 있습니다.

“만일 어떤 여인이 아들을 낳기 원하면 관세음보살님께 예배 공양하라. 그러면 복덕과 지혜를 갖춘 훌륭한 아들을 낳을 것이며, 만일 딸 낳기를 원하면 단정하고 용모를 갖춘 딸을 낳을 것이다.”

관세음보살님은 무량겁 전에 불과를 이루시고 다만 사바세계의 인간을 불도로 이끄시고자 천백억화신을 32응신으로 나투어 항하사의 신통 묘용으로 보살행하고 계시는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이십니다.

관세음보살님께서 년 전年前에 아이를 잉태한 어머니는 배를 쓰다듬으며 관세음보살을 많이 칭명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물론 훌륭한 아들이나 딸 하나 주십사하는 발원을 합니다. 신도 분들께 이런 관음보살 태교법문을 했더니 많은 분들이 아주 총명하고 건강하고 복스런 자녀들을 보았다고 합니다.

 

부처님께서 주관하는 조상님 천도재를 올려드림으로써 돌아가신 부모 조상님들이 모두 하늘세계에 나게 되어 다겁생의 은혜와 빚을 갚게 되고 부처님으로부터는 착하다고 상을 받습니다. 업장을 씻어주십니다.

남편과 아내는 부처님의 가르침삼귀의·오계을 따라 서로의 순결을 지키면서 사랑하며 살다 보면 저절로 그 가정은 잘 되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자녀들을 교육시킬 때 나쁜 친구와 사귀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를 요망합니다. 악의 구렁텅이로 빠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 더 당부 드리고 싶은 말씀은 무당·점집을 찾으시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저급한 무주고혼귀신들과 인연을 맺게 됩니다. 백해무익합니다.

 

만물은 일체一體인 것입니다. 사실 누구나 수행을 잘 해나가면 생각 이전·시공을 초월해 있는 공空을 체험합니다. 그러면 천지만물이 나와 더불어 하나임을 깨닫습니다. ≪화엄경≫의 가르침처럼, 산하대지가 내 몸인 것입니다. 인드라망Indra網_帝網의 이치를 접하게 됩니다.

소립자 물리학에서도 우주를 거미집이라고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는 더불어 사는 것이기에 남을 시기 질투하거나 미워하면, 그만큼 나에게 아픔이 돌아오는 것입니다.

부디 원결을 지으면서 살지 마십시오. 우리는 모두가 한 몸뚱이라는 이치를 알고 어렵게 사는 이웃을 사랑으로 도우면서 살아야합니다. 남이 잘 살아야 나도 잘 사는 것입니다.

 

자라나는 학생들, 이 나라를 짊어지고 나아갈 젊은 학도들에게 최우선하여 인성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나라를 사랑하고 부모 조상님께 효를 다하며 스승을 공경하고 불쌍한 이웃을 돌보며 성자를 숭배하는 참 교육을 시켜야 됩니다.

진실로 도덕교육은 중요한 것입니다. 지식, 기술, 실용교육은 한 세상 잘 살 수 있게 하지만 도의道義교육은 개인적으로는 금생도 다음 생도 잘 살 수 있는 양식이요 국가적으로 볼 때는 대를 이어서 진실로 부강하고 평화시대가 지속되게 하는 자양이 됩니다.

 

우리는 오늘날 유대인들의 자녀교육을 본받아야 합니다. 어린이들을 ‘참 인간’이 되도록 교육해야 합니다. 그들은 학교 성적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토라와 탈무드의 성구를 자장가 삼아 아이들을 재웁니다. 머리 속에 하느님을 의식하고 경외하도록 하며 강인한 정신력을 심어줍니다. 과연 그들은 지난 수천 년 동안의 기나긴 한 많은 역사를 딛고 지금은 세계가 괄목할만한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노벨상을 받은 사람의 25%가 유대인이랍니다. 그들의 국내 인구는 고작 우리 한국의 1/10이요, 세계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을 다 합쳐도 1,500만이 채 못 된다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세계의 금융, 오일, 정보, 곡물시장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우리는 위의 태교법을 비롯해서 유대이스라엘과 일본의 유아·청소년 교육을 귀감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국민들은 출가하여 수행을 잘하는 청정 승僧들을 우대하는 관습을 지어가면 좋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색잡기에 빠지면 가정도, 국가도 장래가 없습니다. 망합니다. 참으로 복 받을 국민이라면 통치권자를 잘 만나야 합니다. 개인의 사리를 떠나 다만 국리민복만이 화두가 돼야합니다. 지도층에 있는 이들이 부처님의 가르침팔정도와 육바라밀, 십선을 치정治政에 원용해야합니다.

국가 민족의 지속적인 융창을 위해서는 창조적 힘이 요구되고 국민 전체의 애국심을 진작振作하며 착한 행실을 권장하고 이웃을 사랑하도록 할 것이며 국민 전체의 결속력을 강화시켜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하늘제석천왕과 땅지신이 반드시 돕게 돼 있습니다. 나라는 부강해집니다.

 

 

 

출처 :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Ⅱ≫23장 

     광명 만덕, 자재 만현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