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21일 월요일

선근 공덕을 지음이 없이 공부만 하고, 염불만 한다고 보살이 되고 붓다가.(23번)

 

 

스님께서는 윤회의 생사고를 벗어나려면 수행인은 음계,

계율을 잘 지키고 수행처에 들어가 공부, 공부하라고 하

시는데 아무런 선근 공덕을 지음이 없이 공부만 하고, 염불만 한

다고 보살이 되고 붓다가 된다는 것입니까?

 


 

 

공부만 하고 염불만 한다고 보살이 되고 붓다 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오해입니다.

 

나는 해탈을 성취할 가능성이 있는 많은 수의 한국 불자님들과

스님들을 대상으로 해서 법문 한다고 미리 전제를 했습니다.  이들

은 이미 전생에 나름대로 많은 선근 공덕을 지어온 분들이라고

본 것입니다.  이들은 최소한 정직해야 하고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신념을 지니고 계신 분들입니다.  그동안 많이 베풀어왔고 효를

실천했으며 그리고 성인들의 금구성언으로 무장해서 살아온 분들

입니다.

 

더욱이 부처님께 귀의했고 찬탄, 발원하고 있으며 불법과 오랜

동안 인연을 심은 이들이 분명합니다.  내면의 가치를 알고 윤회생

사에서 벗어나고자 도덕을 중심으로 살고, 공부하고자 애쓰는 부

처님의 착한 제자들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여러 생을 살아오는 동안에 본의 아니게 탐  진의 유혹에

빠지고 외도에 떨어져 마음 속 철기둥의 신심이 손상되어 방황하

고 있는 분들이 더러 있습니다.

 

만물은 나와 더불어 한 몸입니다.  따라서 나에 집착한 개아의식

으로는 미래제가 다하도록 공부해도 결코 도를 이룰 수가

없습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얼마만큼의 착한 일과 보살행을 했는가, 어느

정도로 계율을 지켜왔는가, 부처님께 어는 만큼의 깊은 신심을 쌓

아왔는가, 어는 정도로 무서운 수행을 해왔는가, 다시 말해서 무

주상으로 육바라밀 공덕을 얼마만큼 지었는가, 선근 보따리가 어

느 정도인가에 따라 아라한이 되고 보살이 되고 붓다가 되는 것

입니다.

 

무조건 산 속에 들어가 동굴 속에서 마음 공부만 한다고 되는

건 절대로 아닙니다. 수미산만 한 선근 보따리가 있어야 아라한이

되고 보살이 됩니다.  우주만큼 크면 붓다도 됩니다.  제악막작 중

선봉행은 기본입니다.

 



깊은 선정 삼매만이 해탈을 얻는다!

 

 

계戒  정定  혜慧의 삼학은 대 소승이 공통으로 수행하는 공

부입니다.

 

생사의 고해을 건너, 해탈의 세계에 태어나려면 부처님이 제정

하신 계율을 내 생명같이 지키면서 마음 공부를 잘해 선정에 들

어야 합니다.  그러면 지혜가 생깁니다.  다시 스승님의 지도로 완

벽한 청정 계를 지니면서 더욱 가행 정진하면 깊은 선정에 들면

서 지혜가 완성됩니다.  마침내 모든 번뇌의 근원인 무명이 끊어진

자리에서 깨달음을 완성하고 아라한과를 증득하여 윤회생사에서

해탈하는 것입니다.

 

서산 큰스님은 <선가귀감>에서 계행을 그릇에, 선정을 물에,

지혜를 달에 비유했습니다.  계라는 그릇이 튼튼하고 청정해야만

선정의 물이 고요해져 지혜의 밝은 달이 그대로 비칩니다.  계율

히 음계없이 공부하는 것은 헛수고일 뿐이며 절대로 선정에 들 수

없습니다.  깊은 선정에 들지 못하고서는 결코 해탈을 얻을 수 없

습니다.

 

위대하고 거룩하신 우리 부처님의 가르침이 대  소승 불교경전

의 역사적 편집 배경으로 보아서 그리고 종파 불교들이 발흥하면

서 많이도 묻혀지고 왜곡되었습니다.

 

부처님은 깊은 선정을 삼매라 하십니다.  2하늘, 1하늘 천인

의 선정 그리고 아라한 보살 붓다의 삼매를 간단히 소개하겠습

니다.

 

사실은 불 보살의 삼매에 대해서는 언급한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기왕 삼매를 주제로 법설을 하게 됐으니 이 부분 역시

간략하게나마 짚고 가겠습니다.

 

삼매는 범어로 'Samadhi'라 하며, 한문으로 정이라 번역합니

다.  몸과 마음이 깊게 통일된 상태인 선정 dhyana과 같은

뜻으로 쓰입니다.

 

어는 힌두교의 유명한 요기요가 수행자는 21일간 삼매에 들 터이

니, 결가부좌한 입정 상태로 자기를 땅 속에 파 묻어뒀다가 21일

후에 파보라고 했습니다.  제자들과 신도들이 모여 지정한 날짜에

스승이 묻혀 있는 곳을 파헤치니, 과연 그 요기가 깊은 삼매에서

깨어나 벌떡 일어났습니다.  이 사실은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건이

되어 인구에 널리 회자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건이 벌어겼습니다.  임제선종이라는

종파의 백은 선사 문하에 있던 한 고승이 풍량을 만나 배가 뒤집

혀 물 속에서 삼매에 들었답니다.  이 스님은 이십 일 후 어부의

그물에 걸려 세상으로 나와 삼매에서 깨어났습니다.  일본이 발칵

뒤집혔다고 합니다.

 

현재에도 생존해 있는 중국의 어느 대법사는 6년여 동안을 삼

매에 든 가운데 천상과 서방극락세계를 유람하고 아미타부처님의

법문까지 듣고 깨어났다고 합니다.  <극락세계유람가>라는 책에

나와 있는 내용입니다.

 

나는 이 자리를 빌어서 여러 불자님들께 엄숙하게 진실을 알립

니다.  진실이 밝혀지고 널리 알려져야 비로소 정법이 살아납니다.

위에 소개한 세 가지 삼매의 사례는 모두 거짓입니다.  


이는 세상 사람들을 속이는 신통에 불과합니다.  생사를 초월하는 

불법의참 삼매가 아닙니다.  진짜 삼매는 아라한부터 들기 때문입니다.

삼매라는 성스런 용어를 앞세워 사람들의 눈을 속이는 신통술은

아무리 지탄받아도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깨달으면 모두 부처로 아는데,.......(22번)

 

스님의 법문은 늘 진솔하고 당당합니다.

깨달으면 모두 부처로 아는데, 스님은 깨달은 후에 보림을

잘해 증득하면 거기가 아라한이라고 밝히신 점이나 수행승의

영체의 청정 정도로써 아라한, 보살, 불을 구분해 말씀하시는 대

목도 흥미롭습니다.

 

비록 다겁생에 걸쳐 희유할 만큼 수행을 해왔다 해도 어찌 햇

빛 속만큼, 눈이 시려 볼 수 없는 정도까지 마음의 때를 벗길 수

있답니까?

 

 

중생들이 억겁다생을 살아오면서 많은 업을 짓고 살았기

때문에 그 영체는 마치 똥통에 빠진 걸 막 건져 내놓았

을 때처럼 더럽고, 그 색깔은 거무튀튀한 빛을 띤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라한으로 증입하는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은 착한

마음을 내어 좋은 일을 많이 하고 도덕을 바탕으로 하여 바르게

살며, 성인을 흠모하는 마음에서 '성인 중의 성인'이신 부처님을

생각하고 호명하여 과거를 참회하고 불법에 귀의하는 것입니

다.  그리고 윤회생사에서 벗어나야겠다는 결심으로 출가하여 고행

난행하여 우주의 밑바닥 채성을 깨우친 이후 음계를 지키며 두타

행으로 정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비로소 아라한으로 증입할 수

있습니다.

 

똥통의 물을 삼급수로 정화했다면 이런 경지가 천인에

해당됩니다.  이급수를 아라한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일급수가

보살이요, 다시 청정수에 이르게하려면 세 단계의 '특별 여과'를

거쳐야 한다고 할 때, 모든 단계를 거쳐 증류수처럼 순도 100%

의 청정수가 되었을 경우가 바로 붓다의 위에 해당하는 것입니

다.

 

똥통 물이 이같이 순수한 증류수처럼 되려면 백천 생 아니 겁

을 두고 수행하여 선근 공덕을 쌓아야 합니다.  그래서 붓다 된

이의 영체는 햇빛 속의 빛보다 더 강하게 발광하는 것입니다.

 

 


보신부처님에 대해서 설명 해 주십시요

 


 

스님께서는 정토종에서 그러하듯 보신 개념으로 부처님

을 말씀하시는데, 다시 한번 보신부처님에 대해서 설명

해주십시오.  염불 행자로서 부처님에 대한 거룩하고 희유한 부분

의 법설을 더 듣고 신심을 정립하고 싶습니다.

 


 

보신부처님은 빛으로 이루어지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빛이란 자연의햇빛도 아니고 또 사람마

다  각자 지니고 있는 마음 자리 근원 빛도 아닌, 보다 더 근

원적이고 본원적인 빛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빛를 무량광 혹은

백종오색광, 억종광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붓다들의 몸은 그러한

빛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무량광은 지혜, 자비, 신통 능력, 선정,

복덕 자체입니다.  영원히 손상되지 않고, 오염되지 않으며 초월적

이면서 온 우주에 충만해 있는 광명입니다.

 

부처님은 그때 그때 필요에 따라 청색, 아리보리색, 무색 등 단

색 또는 억종광명을 내어 방광하십니다.  부처님께서 방광하실 때

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보다 구체적인 표현은 밀장이기에 접

습니다.

 

현신하실 때는 빛를 안으로 거두시지만 모습이 단엄하시고

32상 80종호 이상으로 희유하십니다.  몸 주변에서는 맑고 밝은

빛의 광휘가 장엄 현란하십니다.

 

무량광에 대해서는 앞에서 누누이 말씀드려서 생략합니다만, 그

빛의 광도, 강도가 천문학적이면서도 내외 명철, 영롱 청정한

것이 특징입니다.  부처님의 지혜와 삼매, 신통 자재하신 위신력

주적인 능력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법설하도록 하겟습니다.



 불 보살의 개념을 보신 개념으로 ...좀 더 쉽게 설명해주십시오



스님께서는 지금까지 불 보살의 개념을 보신 개념으로


대치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신선한 느낌도 있으나 선서


를 꾸준히 보아오고 여러 불교학자들의 주석만을 접해온 우리는


지옥 극락설을 포함한 스님의 법설을 쉽게 받아들이기가 어렵습


니다.  좀 더 쉽게 설명해주십시오.




선은 자기 존재의 본성을 꿰뚫어 보는 것, 속박으로부


터 자유를 향하는 길을 가르칩니다.  그래서 지옥이란 따


로 어디에 존재하고 있는 실체가 아니라 우리 마음의 산물로 봅


니다.  서방극락 역시 '주체로서의 참 생명의 땅', '우주 생명의 근


원적인 바탕'으로 봅니다.


 


욕심이 많아 화를 내며 어리석음이 가득해서 시기 질투하고


항상 괴로워하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지옥에서 살고 있다


말합니다.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불화와 이기심이 가득 차 자


기만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다른 사람의 존재는 무시하기 때문에


사회 윤리가 무너지고 악이 충만한 그런 사회가 바로 지옥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유와 평등, 평화가 가득한 정의사회를 구현할 때 그


곳이 바로 극락 불국토요, 내 마음 속에 극락을 이루면 온 세상


이 불국토가 되고 내 마음 속에 지옥을 이루면 온 세상이 지옥으


로 보인다고 합니다.



또한 십악을 제거하면 십만 리를 간 것이 되고 팔사가


없으면 바로 팔천 리를 지난 것이니 다만 곧은 마음이 극락이


며 진여불성의 생명적 표현을 아미타불이라고 합니다.


 


또한 선에서는 '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하는 그 말도 우주 생


명 그 자체의 상징 언어로 봅니다.  우주 생명을 의인화해서 표현


한 것이라고 본다는 말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말


합니다.  많은 대승경전에 나오는 수많은 불 보살에 대해서도 그


리 봅니다.  심지어는 자성을 필요에 따라 때로는 아미타불로


관세음보살로, 지장보살로, 약사여래불로, 문수보살로, 보현보살로,


미륵보살로 봅니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분명히 선언합니다.  이 깊은 법설은 법을


모독하고 능멸하는 사마 외도의 설이라고 확실히 규정합니다.


 


이 마음은 일찍이 태어나고 없어지는 그런 것이 아니고 천지


생기기 이전부터 하나님 조물주 보다 이전에, 무시 이전부터 스


스로 실존한 영원한 생명입니다.  자기 집착에서 벗어나면 자유를


찾습니다.  이것은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마음一心과 하나


로 온전히 계합할 수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보림을 미래제가 다 하도록 한다 해서 일심 안으로 녹아 들


어가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억 겁을 두고


살아오는 동안 지은 업장, 습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다만 부처님


의 절대하신 위신력에 의해서만 소멸됩니다.


 


자력으로 수십 년을 장좌불와하고 잠을 안 자고 먹지 않으면서


초인적인 수행을 했다 하더라도 어느 부분 정화는 되겠지만 지중


한 업장만은 소멸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삼독 번뇌도 그렇고 기


와 습 역시 그러합니다.  악연도 단절할 수 없습니다.


 


이것들은 붓다의 권내에 듦으로써 비로소 소멸이 됩니다.  소멸


됨으로써 자기의 불신이 소위 연화장세계에 생깁니다.  안타깝게도


인간 능력만으로는 아라한이 한계입니다.


 


<<법화경>>에서는 보신불로서의 석존을 법신불과 거의 동격화


함으로써 영원한 존재로 높이고 있습니다.  무량광으로 이루어진


보신부처님의 위신력은 실로 우주적이기 때문입니다.  우주적인 구


원의 힘을 지니신 붓다님들은 무아 속 절대계에 초월적 권능자로


서 존재하는 인격적인 실존이십니다.  최소한 스님들은 이러한 종


교적 신념을 지녔으면 합니다.


 


'보현보살이 하나하나의 모공에서 미진수 광명을 내


어...." 등의 대목을 <<화엄경>> 등에서 볼 수 있습니다.  보현보


살만이 그런 게 아니고 불신을 지닌 모든 붓다들은 열 군데 몸의


부분 부분에서 부처님의 광명을 내십니다.


 


붓다는 전체로서의 우주 생명입니다.  '무아설'을 잘 이해 못해서


영원히 멸도할 수 없는 불신의 존재까지도 외도적인 아트만


사상으로 치부하면 큰 일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아라한, 보살, 붓다의 위계를 구분할 줄 몰랐


습니다.  불과를 이룬 대선자가 출세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죄 많은 중생의 영체를 똥물로 볼 때 아라한을 2급수로 봅니


다.  붓다는 증류수의 위입니다.  2급수인데 어찌 우주의 체성과


계합이 되겠습니까?  순도가 100% 되어야 우주 생명과 하나로 합


일됩니다.  우주 생명의 근원적 바탕과 계합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성과 불성은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유심주체로서


의 참 생명과 정토는 천지 차이의 개념입니다.  우주 생명에 아라한,


보살을 대입해선 안 됩니다.


 


그리고 지옥 극락 역시 분명히 존재합니다.  종종 지옥, 극락에


대해 법문한 바 있습니다만 다시 말하거니와 차별 세계에서 볼


때 실제로 존재합니다.  우리 인간세계, 짐승세계가 엄연히 있듯


지옥도 있습니다.  공성에서 볼 땐 이원을 초월했으므로 모


두가 공이라 말하는 것이지만, 상대세계에서 사는 미완의 우리


로서는 없다고 법문하면 안 됩니다.


 


극락역시 공의 저편 묘유의 세계에 있습니다.  거기는 청정


국토입니다.  보살 8지 이상이 왕생하는 정토입니다.  극락에는 백


천 번도 더 씻은 듯 투명하고 반짝이는 모래와 자갈이 있습니다.


나무도 연꽃도 있습니다.  연꽃은 사바세계의 것보다 약간 크고 탐


스럽습니다.  누각도 있습니다. 모든 사물들이 부처님의 광명을 은


은히 띠고 있으며 불  법  승 삼보를 노래합니다.


 


이 세계는 아라한으로서는 볼 수 없는 세계입니다.  보살도 상품


보살의 그 맑고 청정한 눈으로만 볼 수 있습니다.  이것들을 모두


관념화, 유심화 시켜서 보면 중생을 오도하는 큰 업이 된다는 것


을 분명히 해둡니다.  이 부분지옥 극락 불 보살들에 대해서는 뒤이어


발간할 2권에서 더욱 상세히 다를 예정입니다.


출처/21세기붓다의메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