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16일 수요일

불교 위대한 가르침이여!(17번)


교학하는 이들은 불교의 무진연기 무아사상 등이 불교의 위대

한 점이라고 합니다.  법계의 위대한 경전 화엄경의 일중다一中多

사상, 보살의 원행願行 사상이나 신비로운 밀교사상, 정토삼부경에

기초한 정토사상 역시 위대한 발견이라고 하여 불교가 제일이라

주장합니다.  시방삼세를 회통하는 불교의 심오한 교의와 철학 사상

은 과연 위대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한편 불교경전의 방대함도 다른 종교의 그것과 비교해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아함부만 해도 1만 8천여의 경들로 이뤄져 있

습니다.  그리고 방등, 반야, 화엄 등의 수많은 대승경전들이 있습

니다.  티베트 쪽으로 흘러 들어간 밀교의 그 수많은 분량의 경전

들까지 합한다면, 분량에서도 가히 위대한 종교라 아니 할 수 없

습니다.

 

또한 불교는 그 화엄사상에서 현대물리학의 상대성이론이나 양

자역학을 불 수 있어서 '과학의 과학' 이요, 선  반야  구사 유

식철학을 보면 가히 '철학의 철학' 이요, '학문의 학문' 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토, 밀교 사상에서 본다면 '종교의 종교' 입니다.

 

과거 장엄겁 동안에 일찍이 불과를 이루셨던 삼천대천세계의 그

수많은 붓다들이 동서남북 상하에 헤아릴 수 없이 많고, 불신佛身

은 없으나 불격을 갖춘 상수上首 보살님들도 무수히 계십니다.  그

래서 불교는 가장 힘이 있는 위대한 종교인 것입니다.

 

극락세계 위의 동방 약사부처님 정토정유리세계와 그 외 시방十方

에 산재한 정토세계에 있는, 무수 무량한 8지 이상 10지까지의

정토보살들과 상품등각 보살들의 수효는 더욱 많습니다.

 

이뿐입니까? 불 보살들을 받드는 성중들은 얼마나 되고요?  일

백사위 화엄성중의 대군단만 해도 어마어마합니다.  사람이 죽어

서 가는 명부와 지옥도 지장보살의 수중에 있습니다.  이렇듯 불교

는 위대합니다.  힘이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  자랑스러운 불자라는 긍지를 갖기 바랍니다.

 

'붓다 중의 붓다' 요, '부처님 중의 부처님' 은 다름 아닌 석가모

니부처님이십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은 삼계의 왕이십니다.  그리고

다음은 다보불입니다.  삼계의 지존이십니다.

 

붓다마다 좌우보처 보살이 배정됩니다.  그리고 붓다마다 50명

이상의 아라한급 성중이 호신합니다.  황금색 장삼과 빨강 가사 그

리고 불자佛子가 주어집니다.

 

불교는 위대합니다!

 

 

  

 

 

문1

 

'성인이라야 능지성인'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붓다

만이 삼신을 구족하신다고 말씀하셨는데, 육조단경이나 많은

불교학자들은 인간중생의 육신 속에 있는 자성 가운데서 삼신불

을 말하고 있습니다.  불의 삼신을 갈파하는 일은 불교사적으로 주

목할 만한 큰 사건임에 분명합니다.

불 삼신설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법문해 주십시오.

 

 

 

 

 

법신  보신  화신 삼신불이라는 용어는 부처님에게만 한정된

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따라서 범부들의 색신 가운데 있는

자성에 법 보 화 삼신불이 내재한다는 주장은 삼신불

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소치입니다.

 

삼신은 불성과 함께 불가사의한 붓다의 경계입니다.  나는 이 질

문에 대한 답을 한국 불교 아니, 세계 불교의 역사 앞에 드리고자

합니다.

 

붓다의 존재를 이해하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

니다.

 

먼저 법신 보신 화신입니다.

 

관세음보살을 두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관세음보살

은 무량겁 전에 불과를 증득하여 불호가 '정법명왕' 입니다.

상품보살이 다겁생 동안 수행하여 마지막으로 남섬부주에 인신

을 받아와 대적정삼매를 통과하여 불과를 증하면 자기

불신의 몸을 얻습니다.

 

불신을 보신 또는 원만보신이라고 하는데 그 몸뚱이는 빛으로

이루어집니다.  그 빛을 무량광이라 하며, 햇빛 백천만 개를 더한

것보다 강한, 불가사의한 지혜의 빛입니다.  붓다를 뵙는 관문이 되

는 빛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몸은 사대라 하는 물질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유한

하지만, 불신은 불가사의한 빛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 수

명이 무한합니다.  서방극락세계 아미타부처님 좌보처에 계시는

관세음보살 역시 보신불입니다.

 

법신불은 청정법신불이라고도 합니다.  무아 속 절대계에 두시

는 보신의 진불이라는 뜻입니다.  법신불은 보신의 체요, '우

주적인 몸' 입니다.

 

다음으로 붓다가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나투는 몸을 화신 혹

은 응화신, 변화신이라 부릅니다.

 

주로 당대에 붓다 이룰 수행인에게 변화신으로 내려와 지도하며

32 응신으로 인천 중생을 교화하기도 합니다.  자기의 원만보

신을 붓다세계에 그대로 놔두고 사람 몸을 받아 오기도 하는데, 그

분을 화신 또는 응신이라고 하는것입니다.

 

보신불의 능력은 무한합니다.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지혜

자비를 갖추고 있어서 백천만억의 화신을 내어 중생을 교화할 수

도 있습니다.  얼굴과 모습은 필설로 그릴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훌륭한 상모를 다 갖추십니다.  음성 역시 미묘하여 모든 붓다들은

그 거룩하고 희유하심이 우리 인간들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붓다

삼신의 경계는 붓다가 아니고서는 알 수 없습니다.

 

불교 학자들의 삼신 해석은 실제를 접하지 못하고 다만 여러 경

전에 포함된 내용을 취합해서 설명하고 있기에 추상적입니다.

 

가령, 그들은 법신을 '진리의 몸' 이라고 관념적으로 정의합니

다.  소위 존재의 근원은 빛인데, 그 빛의 본원정수 엑기스으

로 보신불신이 이루어지고, 그것의 체가 법신이기 때문에 '진리

의 몸' 이라든가 혹은 '완전한 지혜의 몸', '궁극적인 실재'라고

법신을 해석하는 것까지는 들어줄 수 있으나, 법신의 의미를 시

공을 초월해 있고 동시에 시공에 변재해 있는 '우주 생기기 이전

의 면목', '사람의 마음 본체'라 하여 법성 혹은 자성과

같은 의미로 보는 것은 붓다의 경계를 모르는 말이요, 중생의 안목

을 흐리게 하는 잘못된 해석입니다.

 

심지어 도올 김용옥 같은 이는 법신 해석을 "진리의 구현체

로서의 존재성" 으로 규정하고, "먼 훗날 나 김용옥이 대학의 강사

로서,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추상적인 김용옥이 바로 법신" 이

라고 하는 둥 망언을 내뱉고 있습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자기가

깨달은 사람이라 전제하고 보신을 설명해 가고 있습니다.

 

"보신은 역사적 업보의 존재를 말하며, 곧 양무제 같은 이가 바

로 그 사적과 유적이 확실한 역사적 보신의 정형태" 라는 것입니

다.  이는 낙제점수는 고사하고, 아예 점수조차 줄 수 없는 답입

니다.

 

불교의 교가에서는 보신의 설명을 "보살위의 곤란한 수행

을 견디고, 정진 노력한 결과로 얻은 영구성이 있는 유형의 불신의

로 아미타불과 같다"고 대답합니다.

 

각설하고 처음 불과를 증한 수행인부터 말씀드리겠습

니다.

 

오온이 녹아 억겁의 업장이 다하고, 탐진치 등 번뇌의 뿌리

가 온전히 뽑혀지고, 다생의 습이 녹고, 천만생 동안 익힌 악기

가 소멸되고, 악연이 단절되고, 전생의 빚이 다 청산되어서

삼천대천세계 모든 붓다들의 위신력으로 불과를 증한 이는 붓다

들의 세계에 저 태양 속의 눈이 시리도록 밝은 빛과도 비교가 안

되는 무량광으로 이루어진 자기 불신을 얻게 됩니다.

 

깨달음은 한 순간이지만, 자기 불신을 얻어 처음으로 붓다 되는

데까지는 상당한 기간이소요됩니다.  그 불신을 가리켜 보신이요,

원만보신이라고 합니다.  전지전능할 정도의 초월적 인격체입니다.

 

이것은 중생의 눈으로는 도저히 볼 수 없습니다.  아라한이라 보

살과를 증득한 수행인의 그 청정한 눈으로도 그 불신의 엄청난 광

도 때문에 불신만은 볼 수 없습니다.  불과를 증해가는 이의 맑은

눈을 가진 자만이 불신을 봅니다. 

 

보신에서 천백억 화신이 나옵니다.  인천의 알맞은 모습으로

각기 나투어 인연 중생을 교화, 구제하려는 것입니다.

 

불과를 증하면 그의 육체는 화신이 되면서 그 안에 깃들어

있던 네개의 영체가 빛덩어리가 됩니다.  자기 불신과 격을 같

이 해야 하므로 영체 모두는 빛덩어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육

체 역시 그 빛덩어리 영체를 담는 그릇이니까 청정해야 합니다.

 

이러한 경지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생겁 동안 향상만 하는 오

랜 수행 기간이 소요됩니다.  그래서 '한 사람의 새로운 붓다가 출

세하는 데는 겁의 시간이 소요된다' 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

입니다.

 

붓다는 삼천대천세계 중생들 전부와도 바꿀 수 없는 우주의 보

물이라고 하십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세상에 와서 불과를 이룬 제

자를 '남섬부주의 꽃' 이라 받들어 아끼십니다.  따라서 '깨치면 곧

붓다' 라고 보는 견해는 옳지 않습니다.  '삼신을 구족해야 붓다'라

고 다시 말해둡니다.

 

불과를 이룬 붓다가 죽거나 입적할 때는 이 몸뚱이 육체는 버리

고 그 안의 네 영체가 불계에 있는 자기 불신과 하나로 계합이

되고 다시 자기의 청정법신불과 합일 합니다.  또 모든 붓다님

들의 청정법신불은 청정법신 비로자나불 안으로 뭉칩니다.  이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은 석가모니부처님의 법신체입니다.  청정법

신불은 원만보신의 빛보다 훨씬 광도가 높습니다.  석가모니부

처님의 보신을 원만보신 노사나불이라 합니다.  밀교에서는 청정

법신 비로자나불을 대일여래라고도 합니다.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은 삼천대천세계를 항상 두루 비추고 있습

니다.  저 태양은 비가 올 때 구름이 가리면 대지를 비추지 못하지

만,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은 온 법계를 언제나 섬광같이 비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일체처 일체시 아니 계신 곳이

없으십니다.

 

붓다의 삼신을 게송으로 노래하겠습니다.  아래 게송에 담긴 뜻

은 실로 미증유한 소식이요, 인식의 지각 변동입니다.

 

 

있다 없다를 초월하신 붓다님들!

 

무아 속 절대계에 청정법신 비로자나불로,

영원히 멸도하지 않는 빛으로 계신다네.

 

때에 따라 원만보신 나투시어

보살을 교화하고

제자를 양성하시고

결국에 붓다 만들어 내시네.

 

말세 중생 구원하실 적엔

남섬부주 땅에 태어나

응화신 나투시어

중생 교화하신다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156~161쪽




신통은 생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16번)

 

자이나교, 힌두교, 유교, 유태교, 이슬람교 등의 수행법으로도 휼

륭하게 삼매에 들 수 있고, 윤회를 벗어나 초인이나 도인이 됩니

다.  다만 이들은 붓다와 그 법에 귀의하지 않기 때문에 외도에 속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외도 성자들의 신통을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신통은 생

사 문제의 해결에 보탬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신통이나 영통이란 기본적으로 명부에 들지 못한 영가귀신, 이매

망량들 그리고 정령들이 빙의돼서 옵니다.  또 중음 마가 된 산

속의 요정, 목신, 신성 등이 빙의되거나 외도 신, 하늘 마들의 도

움을 받아서도 옵니다.  그러기에 신통은 악도로 떨어질 업을 짓는

것입니다.  전생에 신통이 장한 도인들의 다음 생이 저주받았다

싶을 만큼 불행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나는 종종 불교가 위대하다고 힘주어 말하곤 합니다.  왜 불교가

위대한지 알려드리고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유교나 도교의 성인들 아니 힌두교,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의

초인들이 도달할 수 있는 영적 내면 세계는 생각이 끊어진 의식

이전의 마음 자리까지입니다.  우주의 근원인 법성, 곧 본래 면목

자성 자리까지는 나아갈 수 있습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동굴 속에 갇혀 있다가 갑자기 태양 빛이 쏟아

지는 동굴 밖으로 풀려 나왔다고 가정합시다.  오직 강렬한 빛에,

무슨 사념 따위가 끼어 들 수 있겠습니까!  공부 중에 공을 참구

해 들어가는데, 이런 경계가 드러난다면 여기가 바로 마음 자리입

니다.  여기까지는 모든 종교의 수행방식으로도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라마크리슈나나 람티어쓰 같은 이들이 신비 체험을 하고

난 이후의 일성이 "모든 종교가 그 근본에 있어서는 하나"라는

것이었습니다.  우주 의식이 되어, 곧 삼매에 들어 노래한 것입니다.

 

여기까지 도달한 인도나 중국의 수행인들이 장생불사하는 기법,

인간으로의 환생법, 의식 전의법, 생열법, 분신불, 공중보행술

그리고 축지  둔갑술 등 온갖 신통술을 개발해냈습니다.

 

그들은 보다 깊은 배후에 우주 속에 변재한 비인격적인 창조

우주적인 대원리를 파악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극락보살의 세계, 무

아 속 붓다의 세계는 몰랐습니다.  아니 알 수 없었을 뿐더러 앞으

로도 알지 못할 것입니다.

 

여기서 나는 말합니다.  무아 속 절대 초월의 세계가 있음을 밝힙

니다.  여기는 오직 불과를 이룬 붓다만이 들어갈 수 있는 세계이며

우리 교주 불 세존께서 최초로 발견하셨습니다.

 

붓다의 세계로 가는 징검다리가 보살입니다.  보살의 세계요, 청

정이요, 정토극락입니다.  여기서도 백천만리 깊이 들어가면 보살

과도 현격히 차이나는 붓다의 세계가 있습니다.  상적광토법신불의 세계

혹은 연화장세계보신불의 세계라고 합니다.  거기 무아 속 절대세계에

삼신을 구족한 붓다님들이 있습니다.  붓다님들은 각기 창조주의 반

열에 듭니다.

 

붓다는 빛입니다.  그 빛은 지혜이며 자비요, 신통이며 복덕

이요, 오염되거나 손상될 수도 없습니다.  우주에 뻗쳐있어 변재하

시며 동시에 초월하십니다.  보신으로 현신했을 때의 상모는 단엄하

시어 32상 80종호 이상이요, 광휘 현란합니다.

 

또한 보신불보신부처님은 지혜와 자비, 신통, 삼매, 복덕을 구족하시

며 백천만억 화신을 내십니다.

 

오직 불교에서만 보살이 나오고 붓다가 나옵니다.  보살은 자력과

타력, 곧 부처님들의 가피력에 의해서만 탄생합니다.

 

공부 중에 부처님을 뵙고 이른 아침 동녘에서 또오르는 햇빛같

이 강렬한 부처님문수, 보현, 관음, 세지의 광명을 온몸으로 받는다면 그

경지부터가 보살입니다.  안팎이 드러난 청정 영롱한 청색 지혜광명

입니다.

 

보살지에 오른다면 붓다 되는 일은 보장됩니다.  보살부터는 불퇴

전이기 때문입니다.  <<대반열반경>>에서 "대열반광부처님의 광명이 중생

의 털구멍으로 들어가는 자는 반드시 불도를 이루리라"이르신 대목

과, "만약에 부처님불신을 보는 자는 곧 일체 번뇌가 다 끊어지고

부처님 말씀을 듣는 자는 반드시 불도를 이루리라"하신 말씀을 주

목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라한 성자는 청정 계율을 선지하면서, 나를 죽이는 공부 그

리고 바라밀 수행을 해 나가야 합니다.  염불선으로 들어가야 합니

다.  부모께 효를 다하고 보살행을 쌓아 가면, 자신의 영체는 아침

동산에 떠오르는 태양처럼 청정해져 갑니다.  모든 번뇌망상이 쉬어

서 뜨달림, 집착, 머묾 없는 경지에 들어 급기야 깊은 삼매에 자유

로이 듭니다.  그러면 보살과를 얻어 서방극락에 왕생합니다.

 

<<정토삼부경>>을 보면 불설이 아닌 대목이 많습니다.  학자들의

가필 때문으로 보입니다.

 

대승경전은 불교의 삼법인 사상에 따라 학자들이 삼매에 들어서

구전으로 내려온 부처님 말씀을 의지하여 쓴 작품이라고 합니다.

 

대승경전은 기원 전 2세기 후반에서 서기 6~7세기에 걸쳐 성립됐

다는 것이 학자들 간의 정설입니다.  <<반야경>>은 기원 전 2세기

후반, <<금강경>>은 서기 150~200년, <<법화경>>은 기원 전 1세기

경, <<화엄경>>은 1~2세기 사이에 편집된 것으로 보이나, 지금 우

리가 보는 <<화엄경>>은 서기 4세기경에야 집대성됐다고 합니다.

 

대승비불설에 대하여는 다음 기회에 말씀드리겠습니다.  다만 이

기회에  학자라는 사람들은 경을 제작할만한 깊은 삼매에 절대로 들

수 없다는 말씀만 해 둡니다.

 

어쨋든 지금은 중국에서 찬술됐다는 <<정토삼부경>> 중 <<관무량

수경>>의 구품 왕생에 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 대목은 십념을 통해 하품하생으로 왕생하면 12대겁을 지

나 비로소 법설을 듣는다 했고, 중품중으로 왕생한 이는 1소겁을

지나 비로소 아라한 도를 이루며, 상품중으로 왕생한 이는 곧 아미

타불께서 관음, 세지 두 보살과 무수한 천인들을 대동하여 수행자

앞에 이르러 접인해 가는 것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보살이 돼야 극락에 왕생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서방극락세계에는 보살지에 오른 성

자만이 왕생합니다.  이 법문 말씀은 관음보살님께서 일러주신 메시

지입니다.  모든 부처님들의 한결같은 말씀이기도 합니다.  또 실제

로 그렇습니다.

 

극락세계는 윤회를 벗어난 해탈오계이기 때문에 중생도 없고 여

자도 없습니다.  시공을 초월한 정토이기에 아라한도 없습니다.  보

살만의 세계입니다.

 

분명히 밝히는 것은 극락세계는 성중 곧 아라한이 염불 수행한

후 타력에 의하여 보살이 돼야 갈 수 있는 그런 높은 정토의 세계,

청정 국토라는 것입니다.  아라한 하늘의 위가 미륵부처님이 교주로

있는 도솔정토도솔천 내원궁이며, 도솔정토 위에 꽃비를 내리게 하는

천녀정토가 있고, 천녀정토 위가 바로 서방극락세계입니다.

 

다른 사람의 죽음을 대신할 사람, 자기가 대신 죽어 그를 살

릴 수만 있다면 흔쾌히 죽음까지도 불사하는 그런 사람을 불교에서

는 보살이라 합니다.  불교는 그런 보살 성자를 내고, 붓다를 내는

종교이기에 위대합니다.

 


 그리스도 바바지_역시 붓다는 아니다!

 

20세기 최고의 요가 수행자로 알려진 인도의 파라마한사 요가난

다의 저서를 보면, 지금까지 6백 살도 넘게 살고 있는 트라일랑가

같은 위대한 싯다완성된 존재들을 위시하여 수 세기 아니 어쩌면

수천 년 동안 자신의 유체를 보유해 온 그리스도 바바지, 45년 동

안 깊숙한 동굴에서 하루 스무 시간씩 요가 명상을 하면서 초월의

식 속에 사는 요기요가 수행자람고팔, '세계 8대 불가사의 성녀'로 꼽

히며 50년 이상을 한 조각의 음식도 먹지 않고 사는 여자 요기 기

리 발라 등의 위대한 성자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인간이 스스로 지은 업을 따라 육도를 윤회하는 것은 기

본적으로 잘 아고 있었습니다.  육체 안에 있는 영체들을 이야기하

고 있으며, 수행인이 깊은 삼매에 도달함으로써 '천상의 천상' 이라

할 수 있는 윤회를 벗어난 하늘에 난다고 설법합니다.  보다 높은

근원적 세계로부터 온, 거의 완전한 대성자의 존재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런 성자들이 역사 이래로, 힌두교에서만 기백 명이 출

현하였다 해서 힌두교의 우월성을 과시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힌두

교는 심오한 철학을 갖고 있습니다.

 

중국은 중국대로 자성속의 보고영보국를 개발하여 장생불사

를 비롯해 온갖 신통법을 창출해 냈습니다.

 

또한 고대 인도에서 발상한 탄트라는 유대 신비주의 쪽으로도

흘러 들어가카발리즘 신과 인간에 대한 심오한 비밀을 밝혀내고 잠재

적 쿤달리니 에너지를 개발해내어 영적인 무한한 능력을 일구어 냈

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초인들은 청정법신 원만보신 천백

억 화신은 구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삼신을 갖춘 붓다가 아닌

것입니다.  곧 그들은 창조주브라흐만, 신, 우주 자체가 될 수도 없고 하나

로 계합하지도 못합니다.

 

나는 말합니다.  위에서 소개한 여러 성자들은 윤회를 뛰어넘어

초월 해탈은 증득했으나 우주 자체, 우주의 근원 빛과는 계합하

지 못했습니다.

 

붓다만이 우주와 계합합니다.  붓다만이 빛과 하나 됩니다.

 

그래서 저들은 대아라한이나 보살급 수준의 외도 정도로 그

칠 뿐이요, 붓다가 아닙니다.

 

오직 붓다만이 우주와 하나로 계합합니다.  붓다의 몸은 우주 자

체인, 본원의 빛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 비밀을 아

는 이는 역사상 부처님 이후 불과를 처음 이루신 사리불 수보리

존자 두 분밖에 없습니다.


 

겁에 하나 출세하는 붓다!

 


불교의 위대한 점은, 불교에서는 이러한 붓다가 나온다는 점입니

다.  삼신을 구족한 붓다는 오직 불교에서만 출세합니다.

 

실제로 어느 대성자라도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을 볼 수 있다면

감격의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원만보신과는 비교도 안 되는, 모든

붓다의 청정법신을 한 몸뚱이로 하는 세존의 진불인 청정법신 비로

자나불 말입니다.

 

여름 한 낮의 햇살, 눈이 시려 볼 수 없는 그런 빛을 백천만 개

합친 것과도 비교가 안 될 만큼 엄청난 밝은, 수미산만한 대지

의 빛 덩어리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을 보고, 하나님이나 창조주 따

위를 넘어서 우주 자체가 되어 버린 무서운 그 부처님의 능력과

지혜를 감득할 수만 있다면 불교의 위대함에 감읍하지 않고 견딜

수 없을 것입니다.

 

한 분의 붓다는 그 위대함에 있어서 모두에서 소개한 여러 성자

들도 감히 따라오지 못합니다.  세존께서는 붓다의 출세를 "겁에 하

나, 천만 생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하다"고 비유하십니다.

 

'중생 그리고 인간은 본래 불'이라 합니다만, 부처님께서는 그렇

게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다만 누구나 불성이 있기에 가능성이

있을 뿐입니다.  무명 번뇌를 다 거두어 내고 업장을 다 녹이면 성

자가 되고 나아가 공부가 날로 향상된다면 보살이 되고 언젠가는

붓다가 됩니다.

 

그리고 일체 중생이 여래의 지혜 덕상을 다 갖추고 있다는 경의

말씀도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 말은 마치 하나의 미세한 먼지 속

에 우주가 들어 있다는 <<화엄경>>의 도리 말씀과 비슷한 비유라

하겠습니다.

 

힌두교의 성정 <<베다>>에서도 인간이 백만 년을 수행해 날로

향상만 한다면 해탈을 이룰 수 있다고 합니다.  퇴전하지 않고 인신

을 받아 올 때마다 그렇게 백만 년을 수행할 수만 있다면 누구

나 윤회서 초탈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물론 항상 태어날 때마다 공부해서 향상만 계속한다면 그렇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전생에 공부를 잘해서 상당 수준의 성과

를 얻은 후 다시 원을 세워 인간 몸을 빋아났다 해도 반드시 공

부만 하는 삶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백천 생을 살면서 지은 악연

인연을 따라 방황하기도 하고 혹은 나락에 떨어져 형편없이 망가지

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붓다 이루는 데까지는 3대아승지겁이 걸린다는

교가의 말이 맞습니다.  어쩌다 한 번 실수하여 여자에게 빠지면

공든 탑이 무너집니다.  짐승 몸을 받아 나기도 하고, 지옥에 떨어

지기도 합니다.  수행인은 이런 무서운 경우를 명심하여 뼈에 새기

고 정진해야 합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18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