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 3일 수요일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Ⅱ≫ 17장 중생의 악행惡行과 부처님 계율

 17장

중생의 악행惡行

부처님 계율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계율들을

우리는 힘써 지켜야합니다.

독자獨子 외아들을 애호愛護하듯

외눈一目을 보호하듯

나의 생명같이 알고 지켜야 할 것입니다.

계율이 무엇이며

왜 중요한지 모르는 사람들은

무지해서 크고 작은 지중한 죄를

짓기 마련입니다.

 

 

부처님께서 비유해 말씀하셨습니다.

“옛날 어떤 장자 한 사람이 빈 집 가운데 새와 뱀, 개와 악어, 여우와 원숭이라는 여섯 마리 짐승을 가두어 놓고 길을 들여 보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새는 공중으로 날아가려 하고 뱀은 땅 구멍으로 들어가고자 하며 개는 마을을 찾아가려 하고 악어는 바닷물을 찾아가고자 했다. 또한 여우는 무덤있는 곳을 찾아 달아나려 하고 원숭이는 산 속을 향하여 도망치려고 했다.


그때에 장자는 집 가운데다가 큰 기둥을 단단히 세워놓고 그 여섯 마리 짐승을 붙잡아 맨 뒤에 매일 매일 적당한 음식을 주며 길을 들여 보았더니 며칠이 지남에 차차 주인의 말을 잘 듣고 복종하게 되었던 것이다.”

 

육근의 도적을 조복하자

 

이 말씀 가운데 빈 집이란 우리 육신의 몸뚱이를 말씀하신 것이요, 여섯 짐승은 안·이·비·설·신·의 육근六根을 비유하신 것입니다.


우리 정신은 육신의 포로가 되어 몸뚱이가 하자는 대로 갖은 죄악을 짓고 있습니다. 이 육근의 도적이 바로 탐진 삼독, 오욕의 근본인 것이므로 이것을 조복 받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육근의 도적들을 항복받아 모든 악을 범하지 말고諸惡莫作 착하게 살아야衆善奉行합니다.


단단한 기둥이란 엄정한 부처님 계율인 것입니다. 부처님의 계율로써 방종하는 육근의 도적들을 항복 받지 않고서는 불법正法을 수행할 수 없습니다. 불교 교학을 한다는 불자들 중에서 대승보살행 한다고 자처하면서 계행 지키는 데는 별 관심이 없는 이들이 있습니다.

계는 소승 비구나 지키는 것이고 대승보살은 마음만을 주로 챙기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승보살은 몸뚱이身, 口에 대한 계율은 해결이 됐다지만, 아직도 마음의 뿌리에서 일어나는 병탐진 삼독의 병을 고치기 위해 스스로도 애를 쓰면서 동시에 중생을 널리 구제하는 어려운 수행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소승에선 남의 물건을 실제로 훔치기 전에는 죄를 범했다 보지 않으나, 대승에선 남의 물건을 욕심내어 훔치겠다는 마음만 동해도 벌써 투도죄를 범한 것으로 봅니다.

 

육근의 도적을 다 죽여 버렸다 해서 아라한을 살적殺賊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온갖 번뇌 망상이 끊어지기 때문에 아라한은 다시는 중생계에 나지 않습니다. 능히 공양 받을 만하여 응공應供이라 합니다.


부처님이 얼마나 거룩하시며, 불법이 곧 우주의 진리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 - 명예와 지식만을 탐하고, 재물과 성을 탐하고, 오직 이 세상뿐이라 하며 자기 죽어버리면 그만이라 생각하는 중생들은 자신을 위해서 사람을 죽이거나 남의 재산을 갈취하는 것까지 주저하지 않습니다.


남의 유부녀를 빼앗고 거짓말, 이간질을 다반사로 합니다.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 자기를 배신했다 하여 한때의 애인을 토막 내어 죽입니다. 국가도 죄를 짓습니다. 죄 없는 약소국을 침략하여 수많은 남성들을 몰살시키고 여자들을 능욕하며, 그들의 재산을 수탈하고 청소년들을 자기들의 노예로 삼습니다. 언젠가는 크나큰 과보가 옵니다.

 

인간의 번뇌와 악을 끊고, 더 이상 악행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부처님께서는 여러 가지 계율을 제정하셨습니다. 계戒, 시라는 행동과 언어로써 악을 짓지 않고 이를 예방한다는 방비지악防非止惡의 뜻이고 율律, 비나야은 제재가 가해지는 법률의 뜻으로 행위의 규범을 말하는 것입니다. 계율은 부처님의 간절한 유계遺戒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계율을 스승으로 삼아 정진하라는 유교를 남기시고 열반에 드셨습니다.


부처님은 우주의 진리 곧 연기의 이치와 계합하셨기 때문에 그 분의 말씀은 바로 진리요 법인 것입니다. 우리는 부처님의 계율을 잘 알아 지키는 데 소홀함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큰 죄_짓지 말라

 

계율을 모르는 사람들은 무지해서 크고 작은 지중한 죄를 짓기 마련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파렴치한 죄악은 명예와 지식, 재물과 성, 무지와 사견이 근본이 되어 저질러지게 됩니다. 사람들은 무지하여 애욕에 눈멀고 삿된 소견에 빠져서 우주의 진리인 불법을 받아들이지 않고 정법을 비방·모독하고 능멸하는 큰 죄를 짓습니다.

 

법신·보신·화신을 갖추신 거룩하신 부처님을 훼욕하고 능멸하는 대망어의 큰 죄를 짓습니다. 이것은 죄 중에서도 가장 큰 죄입니다. 오역무간업보다 더한 죄입니다. 극무간지옥으로 떨어져 미래제가 다해도 나올 수 없습니다.

 

다음은 불효不孝와 오역不孝五逆의 대죄大罪가 어떤 것인지 알아야 하겠습니다. 자기를 낳아 길러주신 부모님께 불효막심하여 흉기로 살해하기도 하는 등 하늘과 땅이 용서할 수 없는 죄를 짓기도 합니다. 또 아라한, 보살과 같은 성자를 죽이고 부처님 교단을 파괴하기도 하고 불과를 이룬 대성자의 몸에서 피를 내기도 하는 큰 죄를 짓습니다. 불상이나 불탑, 전각을 방화·파손하기도 합니다.

 

이상의 죄악은 주로 이교도 아니면 그 나라의 폭군군주, 외도의 지식인 학자, 인간 망나니들에 의해 저질러집니다. 이들 역시 무간지옥에 가서 미래제가 다해도 그 지옥에서 빠져 나올 기약이 없습니다.


어쩌다 인간 몸을 받아난다 해도 삼중고, 사중고, 뇌성마비 등 불구자로 왔다가 다시 무간지옥으로 갑니다.


또 10악업이 있습니다. 살, 도, 음, 망 등 10악을 무겁게上品 지으면 중죄가 됩니다.

 

40가지 악행

 

경에 보면 10악업의 각 계목을 스스로 행하면 10악법이라고 했습니다. 예를 들겠습니다. 10악업 중 살·도·음·망어妄語·기어綺語·양설兩舌·악구惡口·탐·진·치 중에서 스스로 살생을 하면, 직접 도둑질하면, 사음을 행하면…….


이렇듯 10악을 지으면 10악법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남을 시켜 악행을 하게 하면 20가지 악법이 됩니다. 또 여기에 10악을 각각 행하는 것에 대해 칭찬한다면 30가지 악법이 되고, 또 10악을 행하는 것을 보고 따라서 기뻐하면 40가지 악행이 됩니다.

 

열 가지 악한 짓을 스스로 하거나, 남을 시켜하거나, 악행을 칭찬하거나, 나쁜 짓을 하는 것을 보고 기뻐하는 것은 큰 죄악이 됩니다. 이런 야비하고 사악한 사람은 더 무서운 지옥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인간 세상에는 죄악의 수가 100가지, 1,000가지도 더 됩니다. 모두가 부처님을 모르고 정법을 모르는 소치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업이 모두를 만듭니다. 하늘, 땅, 우주 만물과 인간, 지옥 천당 모두를 만드는 것입니다. 입과 몸뚱이, 뜻으로 짓는 말과 동작과 생각하는 것 그리고 그 세력을 업이라 합니다. 이 업이 우리 인간의 운명도 결정합니다. 고통은 업에서부터 옵니다.


착하게 살았으면 그에 상응하는 선한 과보를 받고, 악하게 살았으면 고통스럽고 악한 과보를 받습니다. 마치 콩을 심으면 콩을 거두고, 팥을 심으면 팥을 거두듯이 말입니다. 큰 죄를 지으면 지옥에 가고 거기서 나와도 축생계나 아귀계에 나서 고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몸을 받아 와도 삼재팔난으로 혹은 천민 집안에 태어나서 한 평생을 고생합니다. 절대자가 있어 그 고통을 안겨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짓고 스스로 받는 것입니다. 오역죄나 삼중죄는 업장이 되고 5중 과보를 받습니다. 마음에 새기고 또 새겨야 할 일입니다.

 

거듭 말하지만 절대자 하느님이 있어서 공연히 사람들에게 벌을 주고 상을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자업자득이요, 정업은 때가 되면 반드시 받게 되어있습니다. 어떤 신통 변화로도 피할 수 없습니다.

 

음계의 중요성

 

많은 계율 중에서 근본이 되는 것이 살·도·음·망어妄語의 계입니다. 재가불자들은 삼귀三歸, 오계五戒, 십선계十善戒를 받아 지켜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출가 수행하는 이들에겐 사바라이계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스님들이 꼭 지켜야 할 계율이 바로 음계婬戒입니다. 이교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공부하는 과정에서도 중요한 계목이지만, 공 체험 후에는 더욱 철저히 지켜야 할 덕목입니다. 이 계율을 파하게 되면 음주식육, 파용상주, 막행막식으로 빠져들어 갑니다.


무애자유인이라 변명하면서 말입니다. 자기는 그렇지 않다 항변하겠지만 아닙니다. 천 길 낭떠러지에 떨어집니다.


계기戒器_계의 그릇에 금이 가버립니다. 아라한과를 얻었다 하더라도 이 음계를 파하면 퇴전입니다. 죽으면 지옥에 갑니다. 음계는 사마외도의 기준입니다. 나는 이 점을 확실히 해둡니다. 후학들에게 분명히 알려두고자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일체를 요지了知하는 열 가지 심력心力이 있으십니다. 그 중에 업이숙지력業異熟智力이란 것이 있습니다. 사람마다 지은 업에 대한 과보를 소상히 아십니다. 어떤 지중한 죄악을 범하더니 어느 때쯤 죽어서 무슨 지옥에 가서 벌을 받을 것인지 등을 분명히 아십니다.


부처님만큼 역사 이후로 지옥 등 사악도와 천상세계에 대한 법문, 윤회 밖 세계아라한, 보살, 붓다의 세계를 상세히 보시고 말씀하신 분은 없습니다. 이것은 진실한 말씀입니다. 불과를 증한 필자의 진어眞語요, 불광어不誑語요, 불이어不異語입니다.

 

보살의 바라이계

 

보시와 지계바라밀의 수행은 보살이 되는 데 있어서 필수이며 기본인 것입니다. 지난 불교의 역사에서 지계 청정했던 스님들의 정신을 본받지 않으면 우리가 윤회를 벗어나고 정토에 왕생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말하고 싶습니다.


출가든 재가든 정토에 나고자 목표를 두고 공부하는 이들에게 십중대계10중重바라이계가 있습니다.


≪범망경≫을 보면 이 십중계를 어기고 인으로나 연으로, 방법으로 또 그것을 업으로 삼고 살면 안 된다고 자세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불살생계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불자들이 직접 온갖 생명 있는 것을 죽이지 말고, 누가 살생을 하는 데 있어서 내가 원인 제공하는 행위를 하지 말며, 칼이나 그물을 놓아, 함정을 파 죽이지 말고, 도축을 업으로 삼아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한 스스로 죽이거나, 남을 시켜 죽이거나, 칭찬해서 죽이거나죽게 하거나, 죽이는 것을 기뻐하거나 해도 보살의 열 가지 바라이계를 파한 바라이죄重罪라 했습니다.

 

거룩하고 희유하신 우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계율들을 우리는 힘서 지켜야합니다. 마치 독자獨子 외아들을 애호愛護하듯, 외눈一目을 보호하듯, 나의 생명같이 알고 지켜야 할 것입니다. 소중한 생명, 그 목숨을 버릴지언정 부처님의 청정한 계율은 어길 수 없다는 결의를 깊이 새겨야 합니다.

 

자종금신지불신自從今身至佛身

견지금계불훼범堅持禁戒不毁犯

유원제불작증명唯願諸佛作證明

영사신명종불퇴寧捨身命終不退

 

지금의 중생신으로부터 불신에 이르도록

굳게 금계를 지켜 범하지 않겠사오니

오직 원컨대 모든 부처님은 증명하소서

차라리 목숨 버릴지언정 마침내 물러서지 않으리다.

 

부언해두고자 하는 것은 부모를 상대로 한 죄, 붓다를 상대해서 짓는 죄는 큽니다. 큰 죄업이 습이 돼버리면 구원하기 어렵습니다. 붓다 회상을 만나도 구제되기 어렵습니다.


계율이 없으면 공부에도 진척이 없습니다. 선정에 들려면 지계持戒는 기본입니다. 더욱 팔정도와 육바라밀로 살면서 자력·타력 공부를 해 나가야 합니다. 염불 공부를 해야 합니다. 그러면 마장을 극복하고 삼매에 들 수 있습니다. 정토에 날 수 있습니다.


또한 여러 과거 생에 지은 지중한 죄업을 참회하고, 기왕에 큰 죄를 범했다면 진실로 우리 교주 불 세존 석가모니부처님께 깊이 참회하여야만 할 것입니다.


큰스님 회상에 가서 다겁생의 부모에 대한 은혜를 갚고, 부처님께 공양 올리고, 부처님 회상의 정법 문중에 선근을 심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부처님으로부터 업장을 소멸 받고 탐진 삼독의 뿌리도 제거하는 큰 축복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출처 :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Ⅱ≫ 광명 만덕, 자재 만현 저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Ⅱ≫ 16장 무아와 윤회의 주체에 대한 실체적인 진실 -영체를 알지 못한 데서, 무아를 잘못 해석..

 16장

무아와 윤회의 주체에 대한 실체적인 진실

-영체를 알지 못한 데서, 무아를 잘못 해석하여 모순 야기

 

중생이 육도에

윤회 전생하는 데 있어서

그 주체는 1, 2, 3번의 영혼체인 것입니다.

이것은 힌두교의 아트만과는 다릅니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영산불교에서는 인간의 실체는 영체1번이고 이 영체1, 2, 3번가 윤회의 주체가 되어 윤회 전생을 되풀이 한다는 영체윤회설을 주장하였습니다. 물론 이 경우의 영체는 업덩어리가 붙어 있는 청정하지 못한 영체입니다. 청정한 순수 영체라면 당연히 해탈 세계로 가는 주체가 됩니다.


이제 나는 무아와 윤회 주체간의 모순에 대하여 고민하고 있는 우리 불교계에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지적해드립니다.


한 마디로 인간 영혼체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 것에서, 무아를 잘 못 해석하여 이러한 모순을 스스로 야기시켜 놓고 그 모순을 없애려고 온갖 이론을 다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 현재 우리 불교 교학의 실정입니다.

 

본고本考 무아와 윤회의 주체에 대한 학계의 오랜 논쟁에 대하여 여기 현지사에서 불교 논리로 파헤쳐 답한 것입니다. 육도를 윤회하는 인간 영혼체, 적멸의 세계 쪽으로 들어가는 청정한 영혼체를 보는 보살, 붓다의 경계에서는 물론 너무나 상식적인 명제인 것입니다.

 

무아無我는 ‘비본질적인 나’라는 의식, 그것을 부정하는 것

 

여기서 무아를 두 가지 경우로 구분하여 설명합니다. 첫째는 육체에 대한 것으로서 현상계의 모든 것은 고유한 실체가 없다는 의미에서 육체곧, 나도 색·수·상·행·식이라는 오온五蘊의 인연으로 조합된 허망한 것이므로 실체가 없는 ‘무아’라고 보는 것입니다. 물론 영기서 육체 자체가 없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둘째는 영체에 대한 것으로서 여기서 무아의 의미는 내가 수억겁을 윤회 전생하면서 “비본질적인 것들이 영체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상태의 ‘그 나’”를 부정한 개념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활동 주체이며 실체인 영체까지도 없다고 부정한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비본질적인 것들이란 업장, 탐진치 삼독, 108번뇌, 습, 기와 그 찌꺼기영체 뱃속에 있는 업신 따위도 포함들 모두를 말합니다.

 

‘그런 나는 실체로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면 무아無我의 개념이 되고, ‘그것은 ‘참된 나’가 아니다’고 보면 비아非我의 개념이 됩니다. 무아가 불교 용어로 굳어지긴 했으나 일반적으로 비아非我의 개념이 혼돈을 피하면서 이해하기엔 편한 용어라고 생각합니다.

비아非我라고 할 경우에는 또 다른 나의 실체가 전제되어 있는 개념입니다. 그것이 바로 나의 실체인 무구 청정한 영체입니다.

 

무아는 현상계의 모든 존재는 실체가 없다는 가르침_사례

 

이 무아개념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 시켜드리기 위해 현지사에 보신불로 현신하셔서 보여주신 부처님의 가르침을 소개해드립니다. 영ㅅ나 당시 ‘염화시중의 미소’이야기는 부처님께서 불교 핵심 교리의 하나인 무아사상을 가르쳐 주기 위한 방편으로 꽃을 들어 보이신 것입니다.

 

이것은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에 나오는 현대판 ‘영산회상 거염화염화시중의 미소’이야기를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최근 대적정삼매에서 부처님과 가섭존자광명 만덕 큰스님께서 직접 대화한 내용을 여기 소개합니다. 영산 당시에 부처님은 육신을 가진 부처님應化身佛이셨는데 지금은 빛의 인격체인 보신불로 현신하셨고, 가섭존자는 당시에는 상수보살이었으나 지금은 불과 이루신 신분으로 하신 대화입니다.

 

어느 날 세존께서 청정법신 비로자나불로 뜨셔서 한마당 작업하시고 원만보신으로 현신하셨습니다. 깨끗하고 탐스러운 꽃 한 송이수국화를 드시고서, “이게 뭐냐”하고 물으셨습니다. 물론 깊은 선정 속의 일입니다.

광명 만덕 큰스님가섭존자

“본래부터 없는 것, 이름하여 꽃이라 합니다.”

하고 대답하시니, 다시 물으셨습니다.

“이 꽃의 실체가 있느냐.”

“없사옵니다.”

“영산 당시의 이 일은 있다 없다를 초월한 자리를 가르치고자 함이다. 살아 숨 쉬는 모두는 이 꽃과 같이 허망하여 실체가 없으니 믿을 것이 없다는 무아사상을 가르침이니라.”

 

진실은 이러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있다 없다를 초월한 자리’는 시공을 초월한 세계본체계를 말씀하신 것이고 ‘실체가 없다’는 말씀은 현상계를 두시고 하신 말씀입니다.

영산 당시 가섭존자는 대보살로서 부처님께서 들고 계신 극락세계의 꽃인 금색 바라화를 볼 수 있었고 그 의미도 간파할 수 있어 홀로 미소를 지어 세존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었습니다.

 

현상계의 실체 없음을 본체계까지 연장하면 잘못

 

현상계의 우주 만물에 일체 실체가 없다는 말은 맞지만 이를 본체계까지 연장하면 잘못된 것입니다.


나에게서 비본질적인 것들을 다 제거하고 난 다음의 ‘나’는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말씀드립니다. 그 존재가 바로 순수한 1·2·3번 영체, 그 중에서도 나의 실체, 인간의 본체인 청정한 1번 영체입니다.


그 영체의 청정한 순도에 따라 아라한이 되고 보살이 되고 붓다가 되는 것입니다. 붓다는 4개의 영체가 청정을 넘고 발광發光을 넘어 빛덩어리 자체가 됩니다. 이 순수한 영체는 본체계의 영역입니다. 그러나 비본질적인 것들이 붙어있는 영체는 현상계의 존재로 보는 것입니다.

 

이제 무아를 설명함에 있어 현상계의 육신과 비본질적인 것들이 붙어있는 영체로 한정해야지 이를 순수한 영체의 본체계까지 확대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윤회의 주체로서의 영체와 아트만Atman

 

사람이 죽으면 육체는 사라지지만 영혼체영체는 육체를 빠져나와 새로운 삶을 계속합니다. 중생의 영체는 다음 생에 지옥을 가거나 사람이나 짐승 몸을 받아오는 등 육도 윤회의 주체가 됩니다.


물론 청정한 성자의 영체는 해탈세계로 가는 주체가 됩니다. 그러나 현재의 불교에서는 이러한 영혼을 윤회 주체로서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실제로는 영혼을 천도시키는 천도재를 많은 절에서 지내고 있는 등 이론과 실제가 모순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오히려 힌두교와 자이나교에서는 영혼과 같은 존재인 아트만Atman_자아이나 지와Jiva_생명 원리가 윤회를 하는 주체라고 봅니다.자이나교의 지와Jiva는 영혼에 업이 부착된 일종의 신체 업신으로서 이 업신이 생을 이어간다고 보고 있어 영산불교의 영체윤회설과 유사한 면이 있다 하겠습니다.


인도의 우파니샤드나 베단타학파에서는 이 아트만을 보편적 실재實在로 보아 브라흐마, 즉 우주적 본성과 같은 성격으로 보고 있습니다.

 

영산불교에서 말하는 영체는 우주의 본성과는 다른 개념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힌두교의 아트만은 인간의 실체와 우주 본성을 혼동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영산불교에서 말하는 영체와 아트만Atman과는 구별됩니다.

 

현재 불교 교학의 ‘무아와 윤회의 주체’에 대한 몇 가지 논점에 대하여

 

현재 불교 교학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무아와 윤회의 주체’에 대한 몇 가지 논점에 대하여 나의 견해를 밝힙니다.

 

첫째, ‘무아를 주장하는 불교에서는 윤회의 주체를 인정할 수 없다’고 하는 데 대하여는 이미 설명드린 대로 무아를 잘못 해석한데 기인한 것으로 무아와 윤회 주체간에는 아무런 모순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들 간에 모순이 있다고 전제하고 윤회의 주체 대신 업이나 아뢰야식을 내세운 이론은 재검토되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 ‘업에 의한 무아 윤회’와 관련하여 견해를 말씀드립니다. 이 이론은 한 존재가 살아있을 때 업력이 잠재적인 에너지, 즉 업력 상태로 축적되어 있다가 죽으면 그 업력이 작용해서 다음 존재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업력이 잠재적인 에너지로서 윤회의 원인이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내가 지은 업은 반드시 내가 받는 것이 인과응보의 우주 이법이며 윤회와 업사상의 핵심입니다.

그러므로 업을 지은 주체영체가 과보를 받아야지 어떻게 윤회의 원인이 되는 ‘업’ 자체가 도리어 과보를 받는단 말입니까? 이것은 본말이 전도된 이해할 수 없는 이론입니다.

 

셋째, 유식학에서는 아뢰야식을 윤회의 주체로 보고 있습니다. 이 이론은 식이란 것이 찰나찰나 변하는 것이라는 측면에서는 무아無我윤회적 입장이지만, 아뢰야식의 경우 종자를 가진 연속적인 식의 흐름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일면 유아有我윤회적인 성격도 있다고 보겠습니다. 그러나 식은 그것을 소유하고 있는 어떤 주체가 있어야 의미가 있으며, 식 그 자체만으로 의미 있는 주체가 되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아뢰야식은 장식藏識이라고도 하며 업의 저장고와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저장고를 만들어 가지고 있는 주체가 윤회를 해야지 그 저장고 자체가 윤회한다는 개념은 맞지가 않습니다. 인과응보의 관점에서는 주체를 떠난 아뢰야식이란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더욱이 유식학에서는 아뢰야식을 선·악·중립의 씨앗을 모두 가진 중성적 존재로 보고 있는데 그 중성적 존재 자체가 지옥에 가서 벌 받고 하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다시 말하면 식 자체가 인과응보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식의 주체를 영체로 보아 이 영체가 윤회를 하는 것입니다.

 

넷째, 윤회를 하면서 ‘한 생에서 다른 생으로 영혼과 같은 어떤 것이 반드시 옮겨가야 할 이유가 없다. 존재 자체가 변화하면서 계속 윤회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업력業力이라고 합니다.


여기서의 가장 큰 문제 또한 윤회 주체가 없이 어떻게 ‘내가 지은 업을 내가 받는다.’는 인과응보의 우주 이법을 만족시킬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변화해 가는 전후의 존재 간에 동일성 보장도 문제입니다.


그리고 현재의 존재에서 다음의 존재로 넘어가는 주체가 없다면 현재의 존재가 지은 업에 대하여 과보를 받아야 할 주체도 없으니 인과응보의 법칙이 적용될 수가 없습니다.

 

다섯째, 지금의 불교계에서도 모든 동물이 윤회 대상에 포함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동물 중에서도 곤충류에는 전혀 영체가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윤회의 대상에서 제외되며, 그 외 포유류를 제외한 동물에는 일부만 영체가 들어가므로 영체가 들어가지 않는 동물은 윤회에서 제외된다는 사실을 알려 드립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2권

펴낸곳/현지사-영산불교사상연구소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Ⅱ≫ 15장 중생의 업장

 15장

중생의 업장

 

범부 중생은 삼독심, 오욕락 때문에

부정한 육근을 통하여

죄업을 짓는 까닭으로

생사고해와 지옥화택을 지어놓고

고통을 받습니다.

중생은 각자가 자신의 창조주입니다.

 

 

《화엄경》에 심여공화사心如工畵師 화종종오음畵種種五陰 일체세간중一切世間中 무법이부조無法而不造“라는 ‘유심게唯心偈’가 있습니다.

마음이라는 것은 그림 그리는 화공과 같아 색·수·상·행行·식이라는 오음五陰을 만들고 있어 일체세계 가운데 어느 법 하나도 마음으로 만들지 않은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범부 중생은 각기 삼독심, 오욕락 때문에 부정한 육근을 통하여 죄업을 짓는 까닭으로 생사고해와 지옥 화택을 지어 놓고 고통을 받습니다. 중생은 모두가 각자 자신의 창조주입니다.

 

부처님의 제자라는 긍지를 갖고 사시는, 사랑하는 선남자 선여인 여러분!

도업을 이루어 윤회를 벗어나고 삼계를 탈출하고, 정토에 왕생하고자 한다면 여러 과거 생에 신·구·의로 지은 죄업장이 정화 소멸되고, 죄악의 업을 짓게 하는 탐진 삼독 번뇌의 뿌리를 뽑아야 합니다.

탐진의 번뇌심으로 살·도·음·망의 악행을 하거나 상습적인 업을 짓고 불·법·승 삼보의 수승한 공덕전功德田에 대하여 훼방·능멸하는 행위와, 부모에 대한 패륜과 불효는 모두 지중하여 정업定業이 됩니다.

 

우리 수행자들은 다겁생의 업장이 소멸되고 사독 번뇌를 제거하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과거 생의 죄업이 지중한 사람은 안으로 번뇌·오음마도 이겨낼 수가 없고 외마 - 몇몇 조상 영가, 원결 영가, 용신, 이매망량, 정매에 의한 빙의와 천마도 자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습니다.


업이 지중한 이들의 영체는 쇠사슬로 묶여 있기도 하고 철갑옷이 씌워져 있거나, 네 영체들이 가지런하지 않습니다. 탐진의 뿌리도 굵고 깊숙이 박혀있습니다. 다겁생의 악과 습의 기, 역시 심각합니다. 이 몸뚱이, 나에 대한 애착은 더욱 끝이 없습니다.

사실 범부 중생들의 업장은 태산만합니다. 중생은 번뇌신煩惱身입니다.

업장소멸_오직 부처님만이 하신다

 

부처님께서 임종시에 설하신 ≪대반열반경≫ 서품에,

“그때 세존께서 입으로부터 가지 가지 광명무량억종광을 놓으시니 그 밝은 빛이 여러 빛깔이라. 그 광명은 이 삼천대천세계에 두루 비추며 이 광명에 쏘이면 죄업과 번뇌가 모두 사라지는 것이었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또 경 9권에는, “대열반광부처님의 깨끗하고 청정한 광명 빛이 중생의 털구멍으로 들어가는 자 반드시 불도를 이루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합니다. 부처님을 만나 당신의 억종광명 빛을 온몸으로 받으면 탐진 삼독 번뇌도, 악·습의 기도 씻겨나갑니다. 업장이 소멸됩니다.

 

어느 날 약사여래부처님께서,

(1) 훗날 OO과를 얻은 어느 스님의 업장을 치우시면서 “이 놈의 업장은 설사 천만 생을 두고 수행한다 해도 제 힘으로는 어쩌지 못하리…….”하셨습니다.깨끗하고 청정한 억종광명 빛을 쏘아 그 수행승의 뱃속 이물질을 소제하면서 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뱃속에는 독사, 구렁이의 어미, 새끼들과 그 알들이 많이도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이 사람은 자기만을 생각하기에 사악하고 야비하고 탐욕스러운 것입니다. 아무리 위선으로 바르게 사는 스님인 척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압니다.


약사여래부처님은 오여래부처님 가운데 한 분이십니다. 이런 큰 부처님의 가피 아니고는 탐·진·악·습기를 제거할 수 없습니다. 영체 상황이 이쯤 되면 부처님 말씀과 같이 자력으로는 천만 생을 가도 깨달음을 얻는 것조차 어렵습니다. 중생들은 스스로 업을 지어 생사고生死苦를 받습니다. 업은 자신의 몸뚱이와 운명까지도 만듭니다.


중생들의 업이 이 세계, 하늘, 땅, 우주까지 창조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업이 지어놓은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창조자인 것입니다.

 

(2) 현지사에 들어와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한 스님의 예입니다. 25여 년을 조계종의 선방·토굴에서 화두 참구하여 한 소식한 스님입니다.

그러나 이 스님도 화두를 놓고 나의 지도에 따라 염불수행한 지 3년이 돼 갑니다. 그간 100겁의 죄업을 소멸 받고 그 이후로도 땅이 꺼지는 소리가 들릴 만큼 큰 업장이 떨어져 나간 바 있습니다. 부처님의 영체 작업의 결과입니다.


이 스님은 금년에 성중하늘 27품으로 인가를 받았습니다. 몇 사람의 예를 더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3) OO스님, 불 세존께서 20겁 중죄를 소멸해 주시고 지옥보까지 단절해주셨습니다. 부처님 회상을 만나지 못했다면, 부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이것은 불가능한 일인 것입니다. 부처님의 위대한 신력 가운데 하나가 당신의 억종무량광명 빛으로 중생의 업장을 소멸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부처님만이 우리의 지중한 업장을 소멸하실 수 있답니다.

 

(4) OO 스님의 경우입니다.

“영체에 용신·사신 영역이 표시되어 있다. 미래제가 다하도록 이들의 권속이 되어, 아는 소리하는 무당이나 박수되어 불행한 삶을 살다 죽으면 지옥보와 축생보구렁이를 받게 된다. 어쩌다 인간으로 오더라도 그들의 영역 표시 때문에 다시 빙의될 것이다. 붓다 회상 만나지 못했으면 그리 살아갈 것을 현지궁 광명·자재 만나 과보가 청산되었다.”하시며 지옥보까지 소멸해 주셨습니다.


이 스님에게는 전생의 과보로 빙의된 남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전생 남편입니다. 그가 구렁이로 살다 자궁 속에 빙의한 것입니다. 함께 바람을 피우던 남자와 공모하여 본 남편을 죽인 몇 생전의 과보였습니다.

 

(5) OO 스님, 작년에 축생보가 소멸됐고, 금년 들어 지옥보·아귀보까지 소멸됐습니다. 얼마 전 제석천왕으로부터 54품 하늘을 통과한다는 인가증을 얻었고 이번엔 성중 18품에 올랐습니다. 그는 40여 년 공직 생활로 모아둔 것 전부를 부처님 회상에 시주했습니다. 무엇보다 진실하고 부처님이 계시며 그 위신력이 무한하다는 것을 굳게 믿는 스님이었습니다. 현지궁에 목숨 바칠 것을 결의한 참한 비구니 스님입니다.

 

염불 공부 잘하고 공덕을 열심히 쌓으면 이렇듯 부처님께서 당신의 깨끗하고 청정한 천만 가지 빛깔의 무량광을 놓아 업장을 소멸해 주십니다.

현지궁 현지사, 부처님께서 상주하시고 현신하시는 부처님 회상은 이러합니다. 꿈같은 현실입니다.

 

부처님 회상_백천만겁 난조우百千萬劫難遭遇

 

사랑하는 현지궁 현지사 불자 여러분!

다겁생을 내려오면서 우리는 가끔 지중한 죄업을 짓습니다. 업장이 될 큰 죄를 지으면 다섯 가지 과보인 무주고혼보, 지옥·아귀·축생의 보를 받고, 인간이 되어 와서도 그 습기과習氣果 때문에 낫기 어려운 업병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로 고통을 받습니다.


죄업을 더 이상 지어서는 안 됩니다. 업을 짓는 것을 무서워해야 합니다. 과거 생에 지은 업이 두터우면 가지가지 마장 때문에 부처님 공부도 진척이 없습니다.


설사 학문이 깊고 고관대작으로 살아 당대에 명성을 드날린다 해도 깨끗이 살지 못하여 청정하지 못하고, 오히려 악을 짓고 살아 그 영혼이 깨끗하지 못하다면 우리는 이런 사람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사람의 미래는 없습니다. 악도에 떨어져 길이 윤회할 것입니다.

 

출가한 승려들이 승려 본분에 충실하게 살아야합니다. 승려답게 살아야합니다. 자력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업장을 일부 정화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소멸할 수는 없습니다. 열심히 공부하면서 보살도를 실천해가야 합니다.


절대계에 계신 부처님을 믿고, 그 위신력을 믿고 부처님을 공경하고 공양드리면서 염불하며 팔정도로 살아야합니다. 이 좋은 기회, 백천만겁 난조우입니다. 붓다 회상을 만났을 때 선근 공덕을 짓고 다겁생의 업장을 소멸 받아 무주고혼을 면하고 지옥보와 축생보도 끊고 아귀보에서도 벗어나 최소한 하늘 천상에 나야합니다.


 

그곳만 해도 중생계에서 볼 때는 극락입니다. 그러나 더 나아가 성중하늘에 나고 아라한이 되어 윤회를 벗어나고, 그리고 왕생정토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출처/21세기 붓다의 메시지 2권

펴낸곳/현지사-영산불교사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