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18일 금요일

도인은 무엇이든지 압니까? 과연 신통이라는 것이 있습니까?(19번)

 

 

도인은 무엇이든지 압니까? 과연 신통이라는 것이 있습니까?

 

 

 

"크게 좋은 일 있어도 좋다 말 못하고, 크게 나쁜 일 있어

도 나쁘다 말 못하는 것, 이것이 붓다의 가르침이니라"

삼매 속에서 직접 말씀해주신 부처님의 법어입니다.

 

붓다들은 절대로 구체적인 예언을 하시지 않습니다.  따라서 경

전 속에 나오는 숫자는 상징적인 의미일 뿐입니다.  따라서 불

과를 증해 가는, 삼매 공부하는 제자가 만일 어떤 신도의 앞일을

예언해 주면 호된 질책을 받습니다.

 

생사를 자재하는 생사 문제를 다루는 공부가 불교입니다.  아라

한 되고, 보살 되고, 붓다 되는 것이 불교 공부의 목표입니다.

 

아는 소리를 하는 것은 귀신이 빙의돼서 그러는 것입니다.  아라

한의 삼명 육통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신통에 대한 법문은 뒤편에

서 자세히 다루기로 하겠습니다.

 

정법을 공부하는 수행인은 마음을 청정히 하고, 업장을 정화해

가는 공부가 우선이요, 핵심입니다.  마음이 청정해지면 빛이 납니

다.  결국에는 빛 자체가 됩니다.  수행이 극점에 이르면 억겁으로

내려오면서 지은 업이 녹습니다.  업장은 흔적 없이 제멸됩니다.

 

이 경지가 수행인의 목표요, 성불입니다.  그러면 자기 불신을 얻

습니다.  아라한을 견성도인이라 칭해도 무방하지만, 보살, 붓다를

도인이라 하지 않습니다.

 

부처님은 당대에 붓다 이를 수행 제자의 눈을 가려 아는 소리

못하도록 하십니다.  다만 생사의 해탈, 삼매 공부만을 하도록 하

십니다.  삼매의 힘 아니면 해탈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

는 소리하거나 신통을 행하는 일은, 큰 업을 짓기에 공부인은 이

를 기피해야 할 것입니다.

 

 

 

 

대 소승의 수행법으로 크게깨쳐도 아라한이라하셨는데,

자력으로는절대 불 보살이될 수 없습니까?

 


 

 

소승상좌부불교 테라바다 대승 금강승의 수행의 본질은 같

습니다.  삼학을 통해서, 탐 진 치 삼독을 닦고

깨달음을 얻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수행법이 다를 뿐입니다.

 

본성을 만남으로써 깨달음을 얻습니다.  그러나 본성과 계합하는

것은  한 식경을 지나지 않습니다.

 

수행은 우리 자신을 위한 무언가를 원하기 때문에 시작합니다.

 

수행이 차츰 깊어지고, 지혜가 증장해 감에 따라 자기 중심의 소

승에서, 비이기적인 수행인 대승으로 나아갑니다.  모든 불교 종파

의 수행은 인간 내부의 탐욕과 성냄, 무지의 제거를 목표로 합니다.

 

불교 수행은 이기심과 집착을 넘어서고 열반을 얻는 것이 목표

입니다.  수행이 깊어지면 자연히 일체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대비

심이 일어나 대승을 향해 나갑니다. 

 

따라서 모든 불교 종파의 수행법으로 깨달았으면 아라한까지는

도달합니다.  여기까지가 우리 인간의 한계입니다.  부처님께서 수

행승이 아라한 성과를 얻도록 주로 가르치신 것도 그 때문입니다.

 

아라한은 다음 생을 받아와 여러 바라밀 수행을 함으로써, 타

력에 의하여 보살과를 성취합니다.  선근 공덕을 쌓아 부처님을 염

하고, 불명을 구창하면 불퇴전의 보살과를 얻게 됩니

다.  자력으로는 결코 보살과 붓다가 될 수 없습니다.  아라한이 인

간 자력의 한계임을 거듭 밝히는 바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붓다는 법 보 화 삼신을 갖춥니다.  법신과

보신이라는 불신을 얻지 못하고서는 붓다라 할 수 없습니다.

 

이 말은 중요한 말입니다.  역사적인 선언입니다.

 

  

ㅇㅇ불의 화신이라는 분을 만났습니다.  그 분도

불 보살을 뵙고, 말씀을 나눈다 합니다.  그 분의 말이

진실입니까?

 

 

분명히 말합니다.  그 분은 사마 외도라고!

확실한 것은 불신도 얻지 못하고서 ㅇㅇ불의 후신이

라 말하는 이는 지옥 종자라는 사실입니다.  공부 중에 무량광

을 보지 못하고서는 절대로 불 보살을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무

량광이라는 빛은 오직 붓다만의 경계입니다.  대보살도 알 수 없습

니다.  무량광은 붓다권으로 들어가는 관문입니다.  이 빛의 광도

와 불가사의한 점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 법문한 바 있습니다.

 

이 사바세계에는 여러 종류의 외도가 있습니다.  변화술에 능한

외도 신, 하늘 마, 마왕 파순이도 불 보살로 나툽니다.  그들

을 불 보살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들 외도들은 부처님의 무량

광이라는 빛을 감히 흉내조차 내지 못합니다.  그 청정하고

안팎이 드러나며 영롱한 무량광을 알지도 못합니다.  산소 용접을

할때 튕겨 나오는 빛을 백천만 개 합쳐도 비교조차 안 되는 그

천문학적인 빛의 광도를, 그 무량광의 빛을 그 외도 신들은 절대

로 방광 방사 할 수 없습니다.

 

다만 그들이 붓다나 보살의 모습으로 잠깐 변화해 보이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이때 빛을 낸다 해도 삼독을 여의지 못해서

탁한 한 가지 색깔만을 낼 뿐이니, 진짜 불 보살이 아님을 곧

판별할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분명히 합니다.  붓다의 보신은 무량광으로 이루어

져 있습니다!  대적정삼매를 통과하여 자기의 불신을 얻어야 붓

다입니다.  불 세존 이후로 수보리 사리불 존자 밖에는 불과를

증한 자가 역사상 없습니다.  예수도, 공자도, 노자도 그 누구도

아닙니다.  나의 붓다에 대한 법문이 처음이기에 이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붓다들과 대화를 나누려면 또 하나의 어려운 관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이 부분은 말씀드릴 수 없으니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출처/21세기붓다의메시지/자재만현큰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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